[문화가 흐르는 한자]<544>諱 之 秘 之(휘지비지)

  • 입력 2003년 3월 13일 19시 24분


諱 之 秘 之(휘지비지)

諱-꺼릴 휘 秘-숨길 비 畓-논 답

遜-겸손할 손 席-자리 석 號-이름 호

漢字(한자)라고 해서 중국사람들만 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나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필요에 따라 한자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 한자인 경우, ‘國字’(국자)라고 하며 꽤 있다. 田畓(전답)의 ‘畓’이나 欌籠(장롱)의 ‘欌’, 媤宅(시댁)의 ‘媤’ 등은 중국에 내놓아도 遜色(손색)이 없는 한자들이다. 물론 한자의 생성원리인 六書(육서)에도 완벽하게 합치된다.

고사성어도 중국인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造語力(조어력)도 알아줄 만하다. 그만큼 지혜가 넘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고유의 것들도 많다. 理判事判(이판사판)이니 咸興差使(함흥차사), 野壇法席(야단법석), 烏飛梨落(오비이락) 등.

諱之秘之도 그렇다. 諱는 言과 韋의 결합인데 여기서 韋는 가운데의 ‘口’를 경계로 아래 위의 두 부분이 서로 어긋나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본디 뜻은 ‘상반되다’, ‘어긋나다’가 된다. 후에 ‘연하고 부드러운 가죽’을 뜻하기도 하는데(韋帶, 韋編) 본디 딱딱하고 무거웠던 가죽(皮)의 성질과는 전혀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 皮를 개량한 것에 革(가죽 혁)도 있다고 했다(2003.1.6 ‘改革’ 참고). 일례로 보통 사람과는 어긋나게 뛰어난 사람이 偉(위대할 위), 날줄(經)에 어긋나게 되어 있는 실((멱,사))이 緯(씨줄 위), 어긋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움직일 착)이 違(어길 위)다.

그렇다면 諱는 ‘말을 어긋나게 하는 것’이 된다. 곧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엉뚱하게 피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諱는 ‘꺼리다’, ‘피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옛날 조상이나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字나 號(호)를 부르곤 했는데 그것 역시 일종의 諱, 또는 避諱(피휘)라고 했다.

秘는 示와 必의 결합인데 여기서 示는 귀신, 조상을 뜻하며 必은 p(으슥할 비)의 생략형이다. 곧 秘는 마치 귀신의 일처럼 으슥하고 은밀하여 도무지 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秘訣(비결), 秘密(비밀), 秘法(비법), 秘話(비화), 極秘(극비), 神秘(신비)가 있다.

따라서 諱之秘之라면 어떤 사건의 是非(시비)나 結果(결과)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쩍 끝내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진실을 가리는 행위로서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다. 흔히 ‘흐지부지’라고 하는데 諱之秘之에서 나왔음은 물론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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