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 그 뜨거운 열기를 찾아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일 때 금이 발견됐다.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호주 출신 광부 에드워드 하몬드 하그레이브스에 의해서다. 그는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의 웰링턴과 배서스트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산들을 돌아보고는 그곳이 캘리포니아의 금광이 발견된 곳과 흡사한 지형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침내 1850년 1월 작은 만에서 금조각들을 발견했고, 매쿼리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또 다른 광맥을 만났다. 하그레이브스는 서둘러 시드니로 돌아왔고 곧 그 소식은 호주 전역으로 퍼져갔다. 그 해 5월이 끝나갈 무렵, 황금의 열기가 시드니와 멜버른, 애들레이드, 호바트를 휩쓸고 갔다. 7월 초에는 1000여명의 사람들이 도착했고 이어 3000여명의 황금 탐험가들이 도착, 탐사를 시작했다. 멜버른의 시당국은 반경 300㎞ 이내에서 황금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200파운드의 보상금을 주기로 결정하고 몇 가지 규제조건을 발표했다. 죄수들이 많은 취약한 사회 구조를 지녔던 행정부로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8월이 되자 발라라트의 강가에서 수십 온스의 황금이 발견되었고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이다.
사금통, 사금홈통, 수로 등 캘리포니아식 황금 추출기술이 그대로 전수되었고 채굴 허가권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사람들은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된 때가 발라라트보다 1년 전인 1848년. 미국의 역사학자 테오도어 히텔이 ‘십자군전쟁 이래 가장 거대한 운동’이라고 평가한 황금을 향한 물결은 주변은 물론 여러 도시를 텅 비게 만들 만큼 인구의 대이동을 가져왔었다. 발라라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변도시인 멜버른과 질롱에서는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여성들은 안전을 위해 자위대를 조직해야 했다. 10월말에 이르러 무려 7000명의 사람들이 발라라트의 산을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삶이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매달 5000∼7000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그 중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미국, 중남미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중국인들조차 끼어 있었다. 금을 발견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고 광부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떼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위와 가난, 질병, 힘든 노역으로 고통 받았다. 이민자라는 이유로 참정권을 박탈당한 채 수모를 받으면서도 금에 대한 열정을 잠재울 수 없었던 이 광부들은 그 후 새로운 광맥이 발견된 뉴질랜드로 또다시 대이동을 감행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 새로운 도시, 발라라트를 만들어갔다.
● 소버린힐에서 경험하는 역사와 재미
호주 빅토리아주의 주도인 멜버른에서 북서쪽으로 112㎞ 떨어진 도시, 발라라트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금광지역이다. 발라라트엔 ‘Voyage to discovery, The Rush for Gold’라고 명명된 관광 프로그램이 있다. 뜨거웠던 황금 열기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의 생활상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발라라트 역사공원협회에서 비영리로 운영하는 마을, 소버린 힐(Sovereign hill)에서 체험할 수 있다.
행정가와 전문가들을 포함해 16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나머지는 전부 협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250명 정도)에 의해 운영되는 이곳은 발라라트의 황금광시대를 역사적인 시기에 따라 볼거리위주로 만들어놓은 일종의 민속촌 같은 곳이다. 1851∼1855년의 금광촌, 1859년 형성된 중국인 마을, 1854∼1861년의 발라라트 시내. 그리고 1860∼1918년의 역사와 이야기를 모아놓은 금광 박물관이 그것이다. 각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당시의 복장을 입은 채 재연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어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관광객들 앞을 태연히 걸어가는 19세기말 차림새의 여성들은 빵 바구니를 한 팔에 낀 채 수다를 떨고, 신문사에선 파이프를 문 늙은 인쇄공이 활자를 골라내고 있다.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카우보이 복장의 사람들 모습도 일상처럼 펼쳐진다.
여행자들은 누구나 계곡처럼 만들어놓은 곳에서 직접 사금을 채취해볼 수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실제로 약간의 사금을 흘려보내기도 해서 찾는 재미가 각별하다.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은 상점들에서 놋쇠로 만든 램프나 레이스, 가죽으로 만든 마구, 생필품 등을 구입할 수도 있다. 상점들의 이름은 ‘레모네이드 텐트’, ‘미스터 존스 텐트’식으로 텐트가 당시의 중요한 주거형태임을 알 수 있게끔 지어져 인상적이다.
특히 기혼 광부들의 숙소나 광부들의 교회, 공직자 캠프, 은행, 우체국, 호텔과 극장, 중국인 보호사무소 등은 작은 소품에서 인테리어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해놓았기 때문에 훌륭한 역사교육현장으로 활용할 만하다.
낮 동안 이런 장소들을 흥미롭게 돌아보고 밤엔 빛과 음향을 이용해서 공연하는 ‘남십자성 위에 흘린 피(Blood on the Southern Cross)’란 이름의 쇼를 볼 수 있다. 공연은 전부 3단계로 이뤄져 있다. 관람객들은 먼저 야외로 걸음을 옮기게 된다. 계곡 입구에서 당시의 생활상이 실감나게 빛과 소리로 재현된다. 사위가 깜깜한 밤이어서 시청각쇼는 사람들을 그대로 19세기의 발라라트로 이동시켜준다. 마지막으로는 현대식 기차에 몸을 싣고 금광촌의 프리트레이드호텔로 이동, 남십자성 쇼를 보게 된다. 헤드폰을 사용하면 우리말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쇼의 내용은 호주에서 유일하게 발생했던 무장반란에 대한 이야기로, 일명 ‘유레카 스토리(Eureka Story)’로 알려진 것이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광부들의 참정권 요구에 대한 이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한편의 쇼로 표현되었지만 40분 동안 사람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정확한 재해석과 그 나름의 재미를 곁들여 현대인들을 과거로 초대하는 지혜로운 방법. 이방인들조차 흥미를 갖고 여행지의 과거로 침잠할 수 있는 즐거움은 이곳 발라라트가 갖는 매력 중 하나이다.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방법
우리나라에서 멜버른까지는 시드니를 경유해 다시 멜버른 국제공항까지 이동한다. 시드니 비행편은 대한항공은 3월 29일까지 화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직항편이 출발하며 9시간55분이 소요된다. 아시아나는 매일 출발하며 소요시간은 10시간10분.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다. 멜버른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약 25분 정도 걸리며 멜버른에서 발라라트까지는 직행기차로 1시간45분 정도 걸린다.
2. 주변관광지
발라라트의 소버린힐 주변에는 제법 재미있는 관광명소들이 많다. 우선 금 박물관을 들 수 있다. 소버린힐의 반대편 브래드쇼우 거리에 있는데 진귀한 사금, 금덩어리, 동전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유레카 전시품은 1854년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싸운 광부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준다. 1850년 이후 이곳의 역사가 담긴 유품과 각 교육기관에서 쓰던 유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다른 명소로는 발라라트 야생동물원이 있다. 호주의 대표적인 동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약 15ha에 이르는 면적에 코알라와 캥거루는 물론 웜뱃, 악어, 파충류 등이 종별로 잘 분류되어 있다.
3. 기타
‘유레카’ 공연만 볼 경우 32호주달러이다. 소버린힐(www.sovereignhill.com.au) 입장료가 포함된 가격은 55호주 달러. 발라라트 내 모텔에서의 숙박과 입장료, 쇼와 저녁 식사 일체가 포함된 가격은 140호주달러 정도. 공연 시간은 약 1시간30분으로 월요일에서 토요일 밤까지 공연한다. 휴가철엔 일요일에도 공연이 있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사전 예약이 필수다. 개장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성탄절을 제외하곤 연중 무휴다.
호주에 관한 여행정보는 호주 관광청(www.eaustralia.or.kr, 02-779-8927)과 빅토리아 관광청(www.visitvictoria.com), 발라라트 사무소(www.ballarat.com) 등에서 얻을 수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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