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입회해서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어린 예비수녀였던 내게 가장 신선하게 와 닿은 것은 당연한 듯 보이는 일에도 서로 아낌없이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 아주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도 서로 미루지 않고 용서를 청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공동체에 불편을 끼친 자신의 허물과 실수에 대해서 서로 사과하고 용서를 청하는 시간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타인 앞에서 소리내 고백하는 것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늘 부끄러운 노릇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기의 못난 점이나 잘못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모습은 자기의 잘난 점이나 성공담을 자랑하는 이의 모습보다 훨씬 아름답고 존경스럽게 보인다.
‘용서하십시오’라는 말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과는 좀 더 다른 여운과 향기를 풍긴다. ‘용서하십시오’라는 말에는 자신을 낮추는 부끄러움과 뉘우침이 들어 있다. 뽐내지 않는 겸허함과 기도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데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표현하는 것은 좋아 보이는데 막상 내가 하려고 할 때면 왜 그리 쑥스럽고 부끄러운지.
그렇게 밥먹듯이 쉽게 했던 이 말을 나는 요즘 그리 자주 하지 않는다. 초심자 시절에 가졌던 예민함과 순진함을 잃어버리고 연륜과 더불어 적당히 무디어지고 뻔뻔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나는 작은 잘못에도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다른 이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한다. 3월의 꽃샘바람처럼 깨어 있는 자세로 ‘용서하십시오’라는 말도 더 자주 연습해야겠다.
우리 모두 ‘피차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3:14)라는 성구를 날마다 새겨 읽고 실천하며 용서의 꽃밭을 가꾸어 가는 새 삶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
이해인 (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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