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뉴욕타임스]혹시 당신도 지금 엉뚱한 약을…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00분


《이름이 헷갈려 위태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처방전의 약 이름에 문제가 있다면 심신의 건강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 궁금한가. 환자인 리자에게 물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40세인 그는 삶의 절반 가까이를 조울증과 싸워왔으며 마침내 몇 가지 약의 조합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이 약 중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경련억제제 라믹탈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2주 만에 진료실에 와서는 재발의 징조인 성급함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

다음날 그를 봤을 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는 배낭에서 약병을 꺼내 책상 위에 ‘꽝’ 내려놓았다. 놀랍게도 약병에 붙은 약 이름은 라미실이었다. 약은 발음뿐 아니라 둥글고도 하얀 알약 모양도 라믹탈과 비슷했다.

지난번에 처방전 사고로 약사가 리자에게 무좀을 치료하는 항진균제를 줬던 것이다. 그의 우울증이 도지기 시작한 이유가 한번에 드러났다.

이름과 병 모양, 약 모양이 비슷한 경련억제제 라믹탈과 항진균제 라미실.사진제공 뉴욕타임스

리자와 같은 경우는 드물지 않다. 1996∼2001년 미국 약전 처방 오류 보고서에 따르면 철자와 발음이 유사해서 조제 때 실수한 경우가 전체 약 사고의 15%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경련억제제 세레빅스와 소염진통제 세레브렉스, 항히스타민제 자이텍과 궤양치료제 잔탁, 항우울제 사라펨과 불임치료제 세로펜 등이 포함된다.

어떤 처방은 전화로 이뤄지고 또 일부는 손으로 써서 처방하기 때문에 의사의 불분명한 발음이나 악필 때문에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두 약이 발음이 비슷하면서 모양도 비슷하면 리자의 경우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국은 전문가집단을 통해 약 이름을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식품의약국 약품안전부의 제리 필립스 부장에 따르면 92년 이후 소리가 비슷하거나 모양이 비슷한 600쌍의 약이 승인을 받았다. 미국에서 등록된 약이 모두 1만5000개라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다. 이 때문에 어떤 약들은 이름을 새로 달기도 한다. 궤양 치료제 로섹은 이뇨제 라식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프리로섹으로 이름을 바꿔야만 했다.

식품의약국은 매년 300여 개의 새 약의 이름을 검토해서 3분의 1의 이름을 시판 전에 바꾸도록 하고 있다.

올해에만 해도 일라이 릴리의 새 주의력결핍장애 치료제 토목세틴의 이름을 항암제 타목시핀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토목세틴으로 바꾸도록 했다.

식품의약국은 약사와 간호사에게 직접 약을 고르도록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도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약 이름 때문에 생기는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국은 93∼98년 이 때문에 52건의 사망사고가 생겼다고 집계했으며 드러나지 않은 사고를 합치면 이로 인한 피해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약 이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 약 이름은 시장논리와 심리학의 복합 산물이다. 대부분의 약은 상품명 전문가가 만든다. 이 분야 전문가인 레베카 로빈스에 따르면 보통 신약 하나에 이름 값으로 100만달러(약 12억5000만원) 정도가 든다.

로빈스 박사는 “좋은 약 이름은 힘, 긍정성, 삶의 질 향상 등을 암시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 치료제인 클라리틴은 ‘Clarity’(깨끗함)와 연관돼 알레르기에서 벗어난 깨끗한 날을 떠올리게 한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이름에서는 나이애가라 폭포를 떠올릴 수 있고 성적으로 나이애가라 폭포처럼 활기찬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약 이름이 비슷할까. 철자가 ‘z’나 ‘x’로 시작하는 발음은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서 선호된다. 반면 요즘에는 과장된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슈퍼’ ‘엑셀’ 등을 약 이름에 넣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만약 약의 이름이 비슷해지는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급적 의사에게 컴퓨터로 처방해서 인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괴발개발 쓴 글씨를 당신이 도저히 못 알아본다면 약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www.nytimes.com/2003/03/11/health/policy/11CASE.html)

정리=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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