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 독에는 A에서 G까지 7가지 형태가 있는데 이중 A, B, E, F가 사람에게 중독을 일으킨다. 보톡스로 개발돼 치료에 사용되는 독은 A형이다.
보툴리눔 독소는 신경마비 물질이다. 신경세포가 또 다른 신경세포 혹은 근육과 연결될 때 신경세포의 말단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신경전달물질은 신경세포의 끝 부분에 주머니로 싸여 있는데 이것이 밖으로 분비되기 위해서는 주머니가 신경 세포의 맨 끝으로 이동한 후, 주머니의 벽이 신경세포의 벽에 붙어야 한다.
보툴리눔 독소는 주머니가 신경세포의 벽에 붙는 마지막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렇게 되면 그 신경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영리한 학자들은 이런 보툴리눔 독소를 응용해 거꾸로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려는 생각을 했다. 근육을 마비시키는 독이 치료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근육에 지나치게 힘이 주어지는 병, 즉 근긴장이상증이다.
근긴장이상증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몸의 일부에만 긴장이 심해지는 국소성 긴장이상증이 가장 흔하며, 또한 보톡스에 잘 반응한다. 예컨대 반쪽 얼굴 근육에 저절로 힘이 주어지는 안면 경련, 저절로 양쪽 눈이 꽉 감기는 안검 연축, 그리고 목 근육에 힘이 주어져 한쪽으로 목이 돌아가는 사경 환자의 긴장된 근육에 보톡스를 주사하면 증세가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보톡스 효과는 몇 달밖에 지속되지 못하므로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보톡스가 원래 신경과에서 사용하는 근긴장이상증 치료약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주름살 펴는 약으로만 알고 있다.
사실 보톡스가 주름살 펴는 데 사용된 연유도 안면 경련으로 보톡스 주사를 맞은 사람에게서 주름살도 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경과 의사 입장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보툴리눔 균 입장에서는 더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보툴리눔은 일찍이 1895년부터 신경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균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들 이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으니 말이다.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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