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게 사는 레드아저씨 농장에 어느 봄날 아기양 한 마리가 들어온다. 레드는 아기양에게 ‘딜라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레드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함께 일하고 함께 놀기 때문이다. 레드는 딜라일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빨간 목걸이를 준다. “이제껏 내가 받은 선물 중 가장 멋진 선물은 바로 너야!”라는 찬사와 함께.
‘펑’ 터지듯 봄이 오고 레드는 조심조심 딜라일라의 털을 깎아준다. 둘의 행복은 레드가 털을 판 돈으로 양을 열두 마리나 사오면서 깨진다. 양들은 딜라일라에게 “양이 할 일은 양털을 만드는 일” “사람처럼 행동하지 마”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겨울로 접어들 무렵 결국 딜라일라는 양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묻는다. 양들의 대답은 ‘절대로’로 시작하는 금지사항뿐이다.
“학교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으니 딜라일라가 안됐어.”
초등 1학년인 딸애는 뭘 아는지 한마디한다.
그날 저녁 레드는 딜라일라를 찾아다니다 풀속에서 딜라일라의 목걸이를 발견한다.
또다시 레드의 쓸쓸한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글씨 없는 겨울 수채화가 연이어 펼쳐진다. 외롭게 밭일하는 레드, 달빛 아래 양떼 옆에서 혼자 잠못 드는 딜라일라, 비바람 속에서 우비를 입고 걸어가는 레드….
비바람 속 꽃봉오리, 봄이다! 이때 양털을 깎았는데…역시 빗방울이 훨씬 가늘어진 그림을 배경으로 다짜고짜 다음 문장이 시작된다.
‘레드가 아직 털을 깎지 않은 양에게 말했습니다…레드는 자신이 딜라일라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습니다.’
“엄마. 왜 울어?”
네살짜리는 고개를 바싹 들며 쳐다보고 딸애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레드가 마지막 양의 털을 깎고, 그 양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레드의 뺨을 핥아준다. 레드는 금세 알아채고 딜라일라도 운다. 어느새 비가 그쳤는지 꼭 껴안은 둘 위로 해가 빛난다. 물론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고 다른 양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 ‘딜라일라는 이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농장에는 할 일이 얼마든지 많았으니까요.’
따돌림을 무릅쓰고 레드를 선택하는 딜라일라의 용기, 딜라일라를 향한 레드의 끝없는 사랑이 가슴뭉클하다. 저자는 ‘마들린느’시리즈로 여러번 칼데콧상을 받은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손자. 그는 ‘마들린느’ 팬을 위해 이와 관련된 책을 써 왔는데 ‘아기양 딜라일라’는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로 쓴 최초의 책이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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