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시아 춤, 식민주의식 혼종 벗고 정체성 회복에 나서
아시아는 우선 지리적으로 방대하며 굴곡이 심한 지형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공연예술의 전통이 있다. 20세기 초부터 세계(주로 서구) 무대에 알려진 아시아 춤이라는 것도 전통 춤을 무대용으로 손질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통에 기대지 않고 세계에 알려진 사례는 중국의 서양식 발레나 일본의 독특한 현대무용 ‘부토(舞踏)’처럼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른 문화권, 특히 서구에서 아시아의 춤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월24일부터 열흘간 도쿄 교토 나고야를 순회하며 열린 일본 국제극예술협회 무용분과위가 주최한 아시아춤회의가 관심을 끈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번 행사는 ‘아시아인의 잠재력’을 주제로 심포지엄과 무대 공연이 함께 열렸다.
이번 회의의 으뜸 가는 화두는 아시아 춤의 변화였다. 변화의 양상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과 일본처럼 변화가 기정사실화된 곳이 있는 반면 말레이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처럼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곳도 있다.
한국은 한국적 양식의 현대무용으로 기존의 서구 주도의 세계 춤 판도를 벗어나는 와중에 있으며 일본의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토는 벌써 세계 춤계의 평가 속에 안착하였다. 말레이시아는 80년대의 한국을 연상시키듯 새 창작 양식을 창안해내기에 고심하는 중이었고 필리핀과 방글라데시는 전래의 춤 양식을 토대로 현대적 양식으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었다.
20세기에 아시아 춤을 에워싼 틀은 ‘오리엔탈리즘’이었다. 즉 아시아 춤은 문명화의 단계에서는 뒤떨어졌으되 이국적이며 고전적 요소를 갖추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경할 만한 가치를 지닌 춤 정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난 세기 후반에 오리엔탈리즘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정치 경제 인문학적 명제가 제기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 회의는 아시아 춤이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키는 무대가 되어서는 안되고 현대의 지평 속에서 아시아 각국의 정체성을 담은 춤 양식을 개발하는 작업임을 알려 주었다.
지금껏 오리엔탈리즘은 세계를 동서양의 상반된 개념과 지역으로 이원화시키는 동시에 동양과 서양을 각기 열등생과 우등생으로 특성화하는 한계를 보였다.
2003년도 아시아춤회의는 유럽과 미국이 도달한 현 단계의 춤 양식을 선진적인 것으로 전제한다거나 그것의 아시아적 수용 방안 같은 것은 거론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각국의 현대적 춤 양식들 가운데 무엇이 주체적이며 그리고 주체적인 춤을 만들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를 집중 조명하였다. 다시 말해 서구 중심의 춤 패권주의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아시아의 고유한 성과와 추후 과제가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춤의 변화상들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지난 1세기 동안 식민주의, 분단, 독재 등 온갖 모순 속에서 새 양식을 암중모색한 한국 춤계의 작업들이 영상 자료와 함께 소상히 소개되었다. 동시에 지난 20년간 우리 춤계가 거쳤던 과정과 근래에 들어 3분법(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이 퇴조하는 독특한 현상에 대해 관심들이 많았다. 전통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응용하는 우리의 춤은 현대 속에서 정체성과 고유성을 살려낸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한편 시각성이 두드러진 몸짓과 정지에 가까운 정밀성을 기반으로 일본적 특성을 담아내는 일본판 현대 무용인 부토를 보면서 전통이 중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호기심을 끌었다. 전통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일본에서 국수적 군국주의에 대한 경계심,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서구 본받기 심리가 도리어 일본의 현대적 춤 창작에서는 전통과 거리를 두게 만든 요인이 아닌가 싶었다.
아시아는 쌀을 주식으로 해도 섭생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시아 문화는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이다. 아시아 춤이 특히 유무형의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현대적 양식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면 가능성은 클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국제 동향에 어두웠던 과거에 아시아 현대춤을 서구적 잣대에 의지하도록 유도하였다. 이에 따라 아시아의 유산에다 서구적 발상과 움직임을 덧씌우는 절충주의가 오래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식민주의적 혼종(混種)에 오염된 몸짓에서 벗어나 창작자가 자체의 문화 유산과 대화함으로써 춤을 창작하는 새로운 기류가 아시아에서 불고 있다.
김채현 무용원 교수·무용평론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몸으로 던지는 화두 ▼
‘2003 아시아춤회의’는 춤 예술을 통해 아시아의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음미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일본의 경우 춤은 제의와 축제를 통해 발전해 왔다. 9세기이래 춤과 오락의 전문 예능인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노가쿠(能劇)가 지배층인 무사계급의 후원을 받는 동안 가부키와 춤이 대중적 오락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춤은 메이지유신 이후 유럽 문화와 기술을 흡수하는 해외 학습을 통해 독특하게 발전하였다. 20세기 초에 독일의 유리트미(율동 체조 유형의 춤)가 일본에 정착하였고 독일 표현주의 춤도 초창기부터 소개되었다. 이런 작업들은 율동적인 몸, 움직임 그리고 노가쿠나 가부키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발산함으로써 일본인들을 새로운 춤 개념에 노출시켰다. 해외 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는 그 후 일본의 현대무용사에서 변동상을 견인하는 구실을 하였다.
해외 문화를 흡수 응용하는 속도는 2차대전 이후 미국 춤이 재빨리 유포되고 80년대에 프랑스 현대 춤이 유입된 데서 보듯 빠르게 진척되었다. 일본 현대 춤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예술 형식도 합당한 것으로 인정받으며 나름의 장르를 확립하는 데 있어 저항이 없는 편이다. 다시 말해 그 원천을 동서양 어디에 두든, 혼종이든 아니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 무용가들이 더 중시하는 것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존재하는가?’와 같은 물음이다.
일본의 부토에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히지가타 다쓰미, 오노 가즈오 그리고 아키라 가사이 등이다. 이들 가운데 히지가타는 자신이 성장한 일본 동북부 지방의 퇴영하는 분위기를 구현했고, 아키라는 판사와 피아니스트가 부모였으며, 오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들의 춤은 각자의 몸과 개인적 기억과 체험을 나타내듯 판이하다.
현재 일본에서 유명한 무용가 가운데 데시카와라 사부로가 있다. 그는 현대 무용가인 윌리엄 포사이트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작품을 연출한 바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의문을 풀기 위해 오노를 방문하였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자문하는 예술가는 자신을 탐색하는 수단으로서 춤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현대예술은 자기 표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무엇을 그려내든 표현의 자유는 아주 존중된다. 일본의 현대 춤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예술이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선언도 통용되고 있다. 이 요인들을 고려해서 이번 아시아춤회의는 각국의 범위를 벗어나 아시아 춤의 현단계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개진하였다.
이 회의에서 우리는 아시아의 몸에 혼재된 다양한 에너지가 강력한 힘이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었다. 전통, 고전 그리고 현대라는 3분법의 울타리를 벗어남으로써(공동의 경험을 가지고 현상을 극복함으로써) 아시아의 몸은 새 자극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하세가와 로쿠 무용평론가·국제 극예술협회 무용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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