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의 경우 런던 도서전의 저작권 센터에 마련된 100여개의 테이블이 채 차지 못했으나 올해는 400개가 넘는 테이블에 각국의 출판사와 저작권 에이전시들이 북적거렸다. 지난해에 비해서도 해외 출판사의 참여가 30% 증가했다.
런던 도서전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은 가을에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앞서 진행 중인 책을 검토하고 새로 나올 책을 점검하는 자리로 도서전이 입지를 굳혀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서점과 도매상, 도서관을 위한 5월의 미국 도서전(Book Expo America)이 미국 시장의 침체와 더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런던 도서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30여개 출판사들이 런던 도서전을 찾았는데, 이는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숫자.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의 김효림 차장은 “런던 도서전의 위상이 점차 강화되면서 최근 1, 2년간 국내 출판사들의 참여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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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런던 도서전은 ‘판타지 문학의 황금기’를 대변했다. ‘해리 포터’를 출판한 영국의 블룸스버리 출판사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내놓은 판타지 소설 ‘Jonathan Strange and Mr. Norrell’은 한국을 비롯한 18개국에서 판권을 계약했다. 미스터리와 스릴이 섞인 ‘Jonathan…’은 유령으로 나타난 영국의 한 왕에 대한 이야기.
‘문학수첩’의 김종철 주간은 “‘해리 포터’로 형성된 판타지 문학의 성인 독자층을 위한 책이 에이전시 사이에 주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주간은 “아동 위주의 판타지는 이미 전성기에 접어들었으며 청소년층이 잠재적인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경영서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해왔던 영국의 약세도 이번 도서전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한 출판인은 “영국 쪽에서 나온 경제 경영 분야의 큰 타이틀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미국이 당분간 경제 경영서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북핵 문제가 대두되면서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에 대한 한국 책들도 관심을 끌었다. 성혜랑의 아들인 이한영이 쓴 ‘대동강 로열 패밀리 서울 잠행 14년’(동아일보사),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의 탈출기인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월간조선사), ‘나는 김정일 경호원이었다’(시대정신) 등의 판권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에릭 양 에이전시’의 양원석 대표는 “이미 영어 번역이 완료된 ‘신상옥 최은희 탈출기’는 거래가 성사될 것이 확실하다”며 “14개국과 판권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책은 ‘The Survival Guide’(호더). 생물학적 화학적 또는 핵 공격을 받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벗어나는지’에 대해 안내한 책이다.
W H 스미스, 하퍼콜린스, 랜덤하우스 등 주요 출판 그룹의 인수가 점쳐지는 타임 워너 북스도 몇몇 주요한 계약들을 성사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중 하나는 아프리카민족회의(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당)를 세운 남아프리카 자유화 운동의 지도자 월터와 그의 부인 앨버티나 시술루의 전기. 월터는 넬슨 만델라와 함께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퍼콜린스는 도서전 개막 첫날 캐나다 작가인 앤드루 와일리의 신작 소설 ‘The Way the Crow Flies’의 영어판 판권을 약 100만파운드(약 19억6000만원)에 샀다. 1960년대 초반 캐나다의 군사 기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10월 또는 11월경 미국 영국 호주에서 출간될 예정.
런던=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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