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공식 슬로건으로 사용됐던 이 문구가 그대로 적용되는 직업이 또 하나 있다. 연예인 스타를 발굴하고 그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매니저’가 바로 그들. 행동에 조그마한 문제가 있어도 뒷얘기가 무성하고 잡음이 인다는 점에서 둘은 너무나 닮아 있다. 비록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매니저의 기획력은 한국 연예산업을 좌지우지하기에 충분하다.
연예계에서 ‘깡통’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가수 매니저 겸 제작자 강승호씨(41). 그가 최근 자전적 성공기이자 매니저 지망생을 위한 지침서인 ‘깡통처럼 살았노라!’(컴온 스포츠 펴냄)를 출간했다. 이 책은 현직 매니저가 직접 쓴 최초의 책답게 감춰진 매니저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왜 하필 별명이 ‘깡통’일까, 책 제목이 ‘깡통처럼 살았노라!’가된 이유는 뭘까? 이런저런 의문을 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카랑카랑하다 못해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에 수십평의 카페가 들썩거릴 정도다. 숫제 민망할 지경. 그의 목소리는 진짜 ‘빈 깡통’처럼 크고 요란했다. 그에 대해 품은 의문들은 한순간에 해결됐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의 요란스러움은 거만함에서 나오는 의도적 과장이거나 사뭇 ‘오버’하는 제스처만은 아니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시끄러웠다”는 것이 그의 해명.
김완선, 소방차, 장혜진, 김종서, 박상민, 사랑과 평화, 윤상, 최근에는 ‘내 생에 봄날은’으로 주가를 올렸던 가수 캔까지. 그간 그가 배출한 가수들에 대해 묻자 가요사를 풍미했던 대형가수들의 이름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김완선, 소방차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사랑과 평화, 윤상은 의외.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 때문일까 조용한 가수는 왠지 그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부끄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한주먹 하던 사람들이 매니저를 했다지만 요즘엔 매니저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어요. 해외진출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만큼 연예산업의 규모가 커졌지만 아직 매니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전무하죠. 저의 경험담이 혹 매니저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있었다면 강씨는 매니저가 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의 그는 꽤 ‘난폭’했다.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그는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했다. 싸움질하기, 술 마시기, 여자친구 사귀기, 나이트 가기…. 심지어 서점에서 책을 훔친 적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꼴통이었다’고 표현한다. 재수를 해서 공업전문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는 그곳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아침이면 종로에서 친구들을 만나 환각제의 일종인 ‘러미날’에 취해 대로를 활보하는 것이 대학생활의 전부였다.
그런 그가 사회에 나와서 직장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친구들의 소개로 카페 종업원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 다행인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것이 옷 장사. 백 댄서를 했던 경력 덕분에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소방차의 방송 출연용 의상을 만들면서 연예계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 후 옷 장사마저 ‘말아먹은’ 강씨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매니저로 변신했다.
특별한 능력도 없고 사업을 할 자본도 없는 그로서는 몸뚱이 하나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매니저처럼 보였다. 빈둥빈둥 놀기조차 지겨워질 즈음 소방차가 소속된 기획사 사장을 만났고 그는 그 자리에서 부탁했다. “저, 매니저 좀 시켜주세요.” 그는 그렇게 매니저 생활을 시작했다.
항상 빈 깡통처럼 빈털터리로 살아서일까. 그는 ‘깡통’이라는 말에 유독 집착한다. 초보 매니저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담은 ‘매니저 입문기’에서 우리 시대의 매니저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모아놓은 ‘매니저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책 전편에 걸쳐 깡통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빈 깡통 매니저론’. 이 부분에서는 ‘깡통소리는 요란할수록 좋다’ ‘깡통처럼 보이되 깡통이 되지는 마라’ ‘깡통을 찬 심정으로 일하라’ 등등 매니저라는 직업과 깡통을 연계해 나름대로의 매니저론을 설파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니저는 PD와 방송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파는 세일즈맨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깡통소리는 요란할수록 좋다), “매니저는 소속 연예인의 흥망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깡통을 찬 심정으로 일하라) 등등이 그것이다.
◇ 맨몸으로 시작 … 배출한 스타 수두룩
힘든 직업인만큼 매니저는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고 때로는 일반인들이 쉽게 만져보지 못하는 큰돈을 벌기도 한다. 그의 책에도 나와 있는 ‘화장실 PR사건’과 ‘12억 수영사건’에 대해 묻자 강씨는 크게 웃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화장실 PR사건’은 PD 비리사건으로 매니저의 방송국 출입금지령이 떨어진 1980년대 어느 날의 이야기. 금지령이 떨어진 줄 모른 채 방송국 안에서 홍보를 하던 강씨는 PD에게 따귀를 맞고 쫓겨났지만 오히려 방송국 화장실에서 앨범을 홍보해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강씨가 홍보했던 김민우의 ‘사랑일뿐야’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12억 수영사건’은 그가 여러 가수들을 히트시키면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당시의 에피소드. 한 음반회사에서 현찰 12억원을 받은 그는 영화에서처럼 모텔 방에 그 돈을 모두 뿌려놓고 그 위에서 수영을 하는 객기를 부렸다. 그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돈다발로 뺨을 때려보기도 했다. 12억원을 다시 주워 담는 데만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며 크게 웃었다.
“미국의 경우는 이미 10년 전부터 ‘미국을 움직이는 50인’에 저 같은 매니저와 문화기획자들이 3, 4명씩 꼭 포함돼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국내에서도 매니저의 위상이 그렇게 될 날이 꼭 올 겁니다. 결국 매니저들이 얼마만큼 전문성과 기획력, 대중들의 마음을 꿰뚫고 선도하는 능력을 갖추느냐에 달렸겠지요.” 강씨는 국내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매니저들이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수이자 부인인 장혜진씨가 미국 버클리대학에 음악유학을 가는 바람에 요즘 ‘기러기 아빠’가 된 강씨. “5년 후 아내가 유학을 마치면 그녀를 위한 헌정앨범을 내주는 게 가장 큰 꿈이 돼버렸다”는 그는 매니저계의 대선배이기 이전에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살뜰한 남편이었다.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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