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의 이해와 감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길라잡이. 그 중에서도 서양회화 시대별로는 19세기에 대해 주로 기술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판화와 조각까지 버무렸다. 서양미술에 한발 다가서고 싶은 초보 감상자들이 기본적으로 궁금해할 만한 작품 감상법과 미술사, 이론을 두루 망라했다는 점에서 ‘미술종합교양전과’라고 할 만하다.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미술감상, 어떻게 할 것인가’로부터 시작해 1권에서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장르화 등 각 장르를 씨줄로 훑어 본 뒤, 2권에서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파 등 유파와 사조를 날줄로 엮어놓았다. 구성의 특징상 이야기가 조금씩 겹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품을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저자는 미술감상을 연애에 비유한다. 상대를 잘 몰라도, 심지어 처음 본 사람에게서도 절실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느낌이 상대에 대한 가장 핵심적, 본질적인 정보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미술감상의 첫걸음은 우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여유 있게 곱씹어보는 일이라고 조언한다.
서양미술사에 수많은 양식과 사조의 변천이 나타나지만 그 원형은 고전주의와 자연주의(사실주의), 낭만주의.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고전주의는 조형적 표현을 양식화, 형식화하려는 특징이 있다. 자연주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주체의 내면과 감정을 더 중시하는 낭만주의는 ‘개인’을 발견한 미술이라고 불린다. 지향점이 다른 이 셋이 서로 중첩되고 대립되면서 다양한 사조와 양식을 탄생시킨 것.
이 책은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추하고 비참한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한 외젠 들라크루아, 지배계층이 아닌 서민의 관점에서 예술작품을 제작한 최초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영혼의 떨림까지 담아낸 80여점의 자화상을 남긴 네덜란드의 천재화가 렘브란트, 현실 그리고 시대와의 불화를 작품 속에 담아낸 반 고흐 등 숱한 화가의 삶과 작품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한다.
많진 않지만 미술을 통해 서양의 문명과 정신을 읽어내고 이를 동양과 대비시켜 보여주는 대목은 흥미롭다. 서양의 원근법은 철저히 ‘인간의 시각으로 본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인간이 세계의 중심임을 보여준다. 동양의 원근표현을 보면 자연과 세계는 사람 눈의 지배를 받는 단순한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화면의 진정한 주체가 된다.
서양미술은 사람의 눈을 감쪽같이 속여 2차원 평면 위에 3차원 세계를 만드는 것, 즉 ‘환영’을 창조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에 비해 동양이 추구한 경지는 곧고 깊은 정신세계였다.
서양의 풍경화는 그 안에 멋진 별장을 짓고 살고 싶게 만든다. 동양의 산수화는 스스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귀의하기를 바란다. 저자는 “서양문명 전체가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해온 문명이고 서양예술은 그 반영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모둠’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짱짱한 지식과 방대한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엮어낸 저자의 공력이 돋보인다. 책에 곁들인 수백장의 도판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