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11개월의 남자아이입니다. 신발도 혼자 신을 수 있고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놀려고 하고 말하는 것도 늦은 편입니다.”(서해진 엄마)》
아이가 걷는 것, 말하는 것이 또래에 비해 늦으면 엄마는 불안하기 마련. 주위에서는 “늦게 트일 것”이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이때는 ‘발달검사’를 받아볼 만하다.
# 늦되는 아이, 늦은아이
유치원에 다니는 성우(가명)는 또랑또랑한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 만 두 살 무렵 양육자가 네 번이나 바뀌었고 만 세 살 때는 집 앞 영어유치원에 6개월 정도 다녔다. 성우엄마는 성우가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원래 늦되는 애들도 있어”라는 주위의 말에 발달검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최근 강북삼성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검사결과 성우는 시지각능력 검사(VMI)에서 5세6개월, 사회성숙도 검사(SMS)에서 6세 수준을 나타냈고 언어능력 검사(PLS)에서는 언어이해능력이 4세, 표현능력은 3세3개월 수준의 발달을 보였다. 김강애 언어치료사는 “성우는 언어발달의 결정적 시기인 초기발달시기에 양육자가 자주 교체돼 안정적으로 언어자극을 받지 못했고 짧은 기간이지만 이중언어환경에 노출돼 언어발달이 더욱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경선 과장은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객관적 환경이 나빴지만 같은 경우라도 정상적 언어발달을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유전인자가 있지만 이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 중 절반 정도만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지요. 환경이 좋으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늦되는 아이’나 ‘늦은 아이’에게나 필요한 것은 증상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라는 얘기다. 노 과장은 “사람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며, 자폐아나 발달지체아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치료에 힘쓰는 것이 아이나 부모에게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아이의 유연성은 무한대
해진이(가명)는 평소 생활하는 데 똑똑하다고 할 만큼 앞가림을 잘하는 아이. 해진이 엄마는 발달지체아인 형의 뒤치닥거리에 바빠 해진이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해진이가 낱말밖에 말하지 못하자 해진이 엄마는 최근 원광아동상담센터를 찾았다.
해진이와 상담한 신철희 부소장(놀이치료전문가)은 “해진이가 말을 배우기 위해 남들과 상호작용할만한 여건을 갖지 못했다”며 놀이치료와 언어치료를 권했다.
“많은 경우 말이 늦으면 엄마들은 ‘언어표현’만을 생각하는데 말이 늦으면 상호작용이 안돼 인지발달과 사회성발달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발달이 늦으면 정서문제까지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조기치료가 필요하지요.”
신 부소장은 “아이가 어릴수록 환경이나 치료에 유연성이 크다”며 “빨리 치료를 시작할수록 치료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놀이는 치료와 성장의 원천
‘늦되는 아이’나 ‘늦은 아이’에게나 대개 1주일에 한두 번씩 전문가와 놀이를 통해 언어발달을 촉진하고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는 언어치료와 놀이치료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전문가의 치료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라고 노 과장은 강조한다.
“부모들이 아이가 울 때 먼저 아이를 생각하는지 부모 자신을 생각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똑같이 ‘왜 울어’라고 말하지만 전자는 ‘정말로 아이가 아파서 우는지 궁금해서 묻는 물음’이고 후자는 ‘자꾸 울어 시끄러우니 그치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이지요. 바람직한 엄마는 아이와 놀면서 말도 가르쳐줄 수 있고, 더욱 중요한 신뢰와 유대감을 쌓고, 정신적으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합니다.”
언어치료나 놀이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병원이나 전문아동상담소, 사회복지관이다. 1회 치료비용은 언어치료(병원) 4만원, 놀이치료(아동상담소) 10만원. 사회복지관에서는 훨씬 저렴해 언어치료 2만원, 놀이치료 2만2000∼3만원. 그러나 대기자가 많아 치료를 받으려면 2∼3개월 기다려야 한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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