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 이혜경씨

  • 입력 2003년 3월 25일 18시 44분


《“극단을 창단하면서 ‘마녀’라고 이름붙였어요. 왜냐고요. 중세 서구에서 300년간 수백만명의 여자가 마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습니다. 과부나 거지들도 있었지만 특히 똑똑한 여자들이 당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마녀로 몰렸어요. 오늘날 여성문화운동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마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죠. 남성 중심적 시각을 깨고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문화를 얘기하자면 ‘나쁜 여자’가 될 각오가 필요했던 거죠.”

이혜경(李惠慶·50) ‘여성문화예술기획(여문)’ 대표의 지난 30년 삶 자체가 어쩌면 ‘현대의 마녀’를 자처한 것인지 모른다. 특히 92년 여문을 만든 이후 그의 이력은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 즉 남성 중심적 체제에서 보면 ‘이단’이었다. 지난달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그에게 준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그 도전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21일 오후 그는 20일 앞으로 다가온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준비로 매우 바빴다. 조그만 사무실 벽에는 자신이 기획해 5회째를 맞는 여성영화제의 빽빽한 일정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여성운동상 수상을 부담스러워했다. “같이 (여성운동을) 시작하고 고생한 사람들이 주는 상이니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쑥스럽기도 하고….”하지만 그는 수상 사실을 바로 잊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코앞의 일이니까.여성영화제 개최에 필요한 돈을 어떻게 모을지 고민하다 보니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

#여문, 여성문화운동의 기지

그가 ‘돈 문제’로 고민하는 건 여문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짐작됐다. 서울 남부터미널 지하철역 뒤 주택가 5층 건물 맨 꼭대기층에 있는 사무실은 20평 남짓. 그 안에서 50명 정도 되는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뒤엉켜 일하고 있었다. 서 있을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여문의 역사는 ‘이사의 역사’다. 여문 창립 뒤 11년 동안 이사를 7번 다녔다. “종로구 사간동에서 출발해 이화동으로, 서초구 서초동으로, 다시 이화동으로, 강남구 신사동으로…. 연극을 하려면 대학로가 좋은데 비싸서….”

사무실은 나름대로 ‘전투적’ 열기도 풍겼다. 그런 전투성이 있기에 어려운 조건에서도 적잖은 일들을 뚝딱뚝딱 해냈을 것이다.

여문은 여성주의 연극으로 화제를 낳았다. ‘자기만의 방’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버자이너 모놀로그’ 등은 대중문화예술 속에 여성주의 문화를 새로운 흐름으로 진입시켰다.

“80년대 여성운동은 구호와 이념 중심이었습니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것이 급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어요. 여성의 욕망과 쾌락, 몸과 성(性) 등 일상의 문제에 대한 탐색을 통해 더 대중화되고 구체적이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여문이 걸어온 길, 또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표면이 아닌 일상의 변화

72년 겨울, 이화여대 2학년이던 그는 연극반에서 활동하면서 여문을 만들 생각을 했다.

“당시 선배들은 탈춤이나 연극을 하는 정도에 만족했지만 나는 여성운동이 분화돼야 하고 여성문화운동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못했어요. 독일 유학을 갔다 온 80년대 중반 그런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됐습니다.”

사회의식에 눈을 뜬 여대생이었던 70년대 초와 지금의 여성계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성장관이 4명이나 있고 조계종에서도 첫 비구니 문화부장이 탄생했으니 여성계 현실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글쎄, 그런 걸 보면 기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를테면 장관은 있지만 왜 차관은 없고 1급도 없을까….”

표면의 변화가 아닌 총체적인 변화가 되려면 일상적인 부분에서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건 제도나 법이 아닌 문화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녀 분리주의 아닌가

여문 창립과 함께 본격 페미니즘 연극을 내세웠던 ‘자기만의 방’은 여성의 주체성, 자립성 모색이라는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여성들이여,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라.”

이 단순 명쾌한 선언은 8개월간 5만여 관객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지식인 여성을 넘어서 대중적 지평을 확보하기 시작한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후 연극과 행사들도 철저하게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에 의해’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2001년 그가 연출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특히 여성의 성기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 형식이나 적나라한 대사 표현이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닫혀 있는 ‘여자만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고 느끼는 남성들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무지한 남성’인 기자는 이렇게 항변 섞인 질문을 해 봤다. ‘여성문화’ ‘여성영화’에서 ‘여성’이란 간판을 이제 그만 거둬들일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분리주의적이라고 할 만큼 아직은 여성의 시각, 여성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여성만의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을 회복하는 것, 우선은 그런 단계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여성이 여성의 시각으로 얘기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여성이 얘기하는 섹시함은 남성 눈에 비친 섹시함과는 다릅니다. 예전에 ‘아마조네스의 꿈’을 남성 연출가에게 맡겼는데 페미니즘 공부를 했다지만 어쩔 수 없는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가 연출한 연극에나 여성영화제에는 적잖은 남성 관객이 찾아온다.

“남성도 왜곡된 성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남성은 그동안 어깨에 과도한 짐을 져 왔어요. 체면 명예 등이 남성성의 상징이었기에 그걸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 분열 소외되고 도구화돼 온 겁니다. 남성도 이젠 자기 안의 여성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핀란드에서는 남성도 뜨개질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고정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야 남성도 자유로워집니다.”

#마녀 같은 피터팬

그의 이력서에는 ‘쉼표’가 없어 보인다. 그는 끊임없이 뭔가를 기획하고, 만들고, 발언하고 있었다. 샘솟는 듯한 아이디어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친구나 동생들 끌고 서울 골목골목을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초등학생 때 여배우 엄앵란씨가 시어머니로부터 구박받는다는 걸 신문에서 읽고는 엄씨를 위로하겠다고 찾아간 적도 있어요.”

집안 분위기가 자유롭기도 했지만 2남4녀 중 유별나게 야무지고 호기심 많았던 ‘꼬마 골목대장’이 여성문화운동의 전위가 된 셈이다.

그는 ‘영원한 피터팬’이 되고 싶어한다. “피터팬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다른 질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도 항상 피터팬이고 싶습니다.”

그는 여문 대표를 2년만 더 맡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뒤 ‘은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랑스의 태양극단 같은 극단을 갖고 싶어요. 매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훈련 토론하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기획자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성문화전문 아카데미를 다음달 초 여는데 처음으로 시도되는 문화기획과정이지요.”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李대표 기획 서울여성영화제 亞최고로 우뚝▼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이혜경 대표와 여성문화예술기획이 1997년부터 열어온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여성영화제로 자리잡았다. 원래 격년제였으나 작년(4회)부터 매년 개최로 바뀌었다. 관객의 호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예산 마련 등이 힘들어 다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관객의 호응을 외면할 수 없어 또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많은 여성영화인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데뷔했다.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이 대표적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출신. 또 이 영화제는 학자들과 여성영화인들이 협력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올해는 4월11∼18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등 3곳에서 열려 7개 분야에 19개국에서 온 120편이 상영된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상영 극장을 늘리고 토론 프로그램도 다양화했다. ‘국제포럼’ ‘아시아여성영화인의 밤’ 등 행사도 열린다. 관객과 영화인이 만나는 ‘쾌걸(girl)-여(女)담’ 자리도 마련된다.

▼이혜경 대표는…▼

△1953년 서울 출생 △75년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졸업 △85년 독일 베를린자유대 사회학 박사 △86∼89년 여성민우회 문화기획실장 △92년∼현재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97년∼현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내 사랑 한반도’ ‘자기만의 방’(92) ‘버자이너 모놀로그’(2001) 등 50여편의 연극 및 행사 기획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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