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이 선정한 우리분야 최고]<9>불교

  • 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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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조계종 스님과 재가신도들은 우리시대 생존하는 최고의 선지식으로 전남 장성군 백양사의 고불총림 방장 서옹(西翁·92)스님을 꼽았다. 인천 용화선원 송담(宋潭·76)스님과 전남 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淸華·80) 스님도 이에 버금가는 선지식으로 추천됐다. 차세대 불교계를 이끌어나갈 스님으로는 전남 구례 실상사의 도법(道法·54)스님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고 전 실천승가불교회장으로 현재 조계종 총무부장인 성관(性觀·48)스님과 성철(性徹)스님 상좌인 원택(元澤·59)스님이 뒤를 이었다. 실상사에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법스님은 스님(8표)과 재가(9표)에서 고루 추천됐다.

본보 문화부가 최근 스님 재가신도 교계기자 83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려 이중 회수된 39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응답자에게는 각 설문 항목당 3명씩 추천해달라고 했으며, 설문 항목에 대해 한 두명만 추천하거나 아예 응답을 하지 않는 경우도 동등하게 설문에 포함시켰다.

이번 설문에서 최고의 강백(講伯)에는 한글 대장경 318권을 완간을 주도한 월운(月雲·75) 스님이 압도적인 추천을 받았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지관(智冠·72)스님은 뛰어난 강백이면서 불교 관련 학문적 업적이 가장 큰 스님으로 꼽혔다. 또 조계종 교육원장인 무비(無比)스님과 중앙승가대 총장인 종범(宗梵·58)스님이 그 뒤를 이었다. 사회운동과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응답자들이 주로 사회운동 분야에 초점을 맞춰 답을 했다. 북한산 순환도로 저지 투쟁과 전북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 등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불교계의 대표적 환경운동가 수경(收耕·54) 스님이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불교 관계자들은 사회복지 분야를 분리했다면 부산 내원정사를 운영하는 정련(定鍊·61) 스님 등도 많은 추천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시대 가장 존경받는 선지식 부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고불총림 방장 서옹 스님. -사진제공 불교신문·동아일보 자료사진

포교 및 사찰운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승려로는 도심 포교에 성공한 지광(智光·53·서울 강남구 능인선원) 우학(又學·대구 영남불교대) 정우(頂宇·52·서울 강남구 구룡사) 등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사찰 운영 면에서는 지홍(至弘·51·서울 조계사 주지)가 비교적 많이 추천됐다. 전체 승려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구니 중 불교발전에 가장 공헌한 스님으로는 운문사 승가대학장 명성(명星·72) 스님과 비구니회장인 광우(光雨·78) 스님이 거의 비슷한 수의 추천을 받아 비구니계의 어른임을 보여줬다. 한마음선원 대행(大行·77) 스님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밖에 해외 포교에서는 서울 화계사 조실 숭산(嵩山) 스님이 압도적인 추천을 받았다. 문화 포교는 응답자 중 비교적 추천자가 적은 가운데 ‘맑고 향기롭게’의 법정(法頂·71) 스님과 동승 그림으로 많은 팬들을 갖고 있는 원성(圓性·30) 스님 등이 추천됐다. 한 불교계 기자는 “문화포교에서 ‘이 사람’하고 딱 떠오르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할 정도로 불교계가 문화활동이 빈약해 추천자가 적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불교 보급과 대사회 활동이 돋보인 재가신도로는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인 박광서씨(54·참여불교 재가연대 대표)가 추천됐다.

▼지관…학문적 업적▼

“열심히 살고 있으면 그냥 놔두면 되지 뭣하러 설문까지 했나.”

지관 스님(72)은 학문적 업적이 가장 뛰어난 스님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역정부터 내셨다. 스스로 원력(願力)을 내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족하지 세속적인 평가에 얽매이기 싫다는 일갈이었다.

지관 스님은 조계종에서 최연소 강사(28세) 최연소 본사 주지(38세) 최초의 비구 대학총장(동국대) 등 여러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불교 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의 편찬.

1700년 전통의 한국불교가 독자적인 불교사전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온 스님은 1983년 15권짜리 불교사림 편찬에 들어갔다. 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사재를 털어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열고 10명의 연구원과 함께 편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스님의 일과는 웬만한 젊은이 못지 않게 분주하다.

“오전 4시 정도엔 일어나 대중들과 시간을 갖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꼬박 연구원에서 머물며 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퇴근해선 처소인 서울 성북구 경국사로 돌아가 새벽 1, 2시까지 연구원들이 낮 동안 초벌 작업한 원고를 교정봅니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 하루 2, 3시간 밖에 안자는 셈이다.

그는 동국대 재직 시절 ‘불교교단발달사’ ‘조계종사’ ‘한국고문비문총집’을 펴내 국내 불교학의 초석을 세웠다. 가산불교대사림은 곧 다섯권째가 나올 예정이다.

다른 분야의 교수급 인재들을 대상으로 불교 원전을 가르치는 ‘참학원’내 강의에도 원력을 쏟고 있으며 동국대 박사과정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하지만 바쁜 일정에도 승용차를 마다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고집쟁이다.

▼도법…승가 차세대 리더▼

“종단 현실이 암담한데 뭔가 바꿔보자고 대책없이 떠드는 놈이 있으니까 앞으로 한번 지켜보자는 거 아니겠어요.”

‘불교계를 이끌고 나갈 차세대 주자’ 분야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도법 스님은 ‘추천받은 이유가 무엇일 것 같냐’는 질문에 허허롭게 대답했다.

“난 사실 능력 없어요. 고민만 많이 할 뿐이지. 1990년 한국 불교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선우도량도 내가 주도한 것처럼 돼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98년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할 때도 은사(월주) 스님과 인연도 있고 해서 불가피하게 맡게 됐지만 실제로는 내가 아니라 밑에서 다 일을 했죠.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내가 앞에 나서서 뭔가 하는 것처럼 여겨지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98년 종단 분규를 마무리짓고 전북 남원시 실상사로 내려온 그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귀농학교 대안학교 농촌공동체 마련에 주력했다. 최근 그는 한생명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사찰 인근 4만5000평의 부지를 마련해 생명공동체를 구체화시키고 있다.

올해의 주요 계획은 화엄학림 스님들과 함께 경전을 공부하는 것과 2000년 2월부터 시작한 ‘지리산 좌우대립 희생자를 위한 1000일기도’를 11월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일.

주변에서는 그가 언젠가 자의든 타의든 조계종 총무원장을 한번 할 것이라는 말이 떠돈다.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종단의 사상적 철학적 빈곤 현상을 없애고 싶은 겁니다. 현 종단 혼란의 근본은 거기서 시작된 거죠.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구성원들이 내재화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사실 조계종이나 본사(금산사)에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걸 해서 뭔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한데 상황의 불가피성은 있어요. 그 땐 따로 생각해봐야죠.”

겸손을 넘어선 그의 솔직함이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힘이 아닐까 싶었다.

▼지광…포교-사찰 운영▼

“제 힘으로 능인선원을 세운 게 아닙니다. 지난 20여년을 돌이켜 볼 때 부처님께서 도와주신 가피를 생각하면 깜짝 깜짝 놀라게 됩니다.”

등록 신도 수만 25만명인 서울 강남구 포이동 능인선원. 80년대 중반 서초구 삼익상가에서 10명도 안되는 신도로 출발한 능인선원은 이제 ‘법문과 수행의 현대화’를 바탕으로 한 대형 사찰과 문화복지센터로 발전했다. 법당 등 순수 종교시설은 1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탁아소 유치원 직업훈련원 노인병원 문화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또 능인불교대학은 10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불교의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지광 스님은 이렇게 ‘도심 포교’라는 새 영역을 개척해 발전시켰다.

“종교는 시대의 선각자가 돼야 합니다. 종교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행과 설법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스님들이 기존 사찰을 유지하는데 급급해서는 안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부처님 같은 수행자세로 끊임없이 변신해야 합니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일간지 기자였던 그는 1980년 언론통폐합 때 해직당하자 곧바로 머리를 깎고 지리산 토굴로 들어가 쉼없이 불경을 읽다가 2년 뒤 비구계를 받았다.

그는 특히 청중들의 수준과 관심에 맞는 법문이 포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부처님도 듣는 이의 수준에 맞춰 설법하는 ‘대기(對機)설법’을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노트에 주제별로 경전 구절을 정리해놓고 국내외 신문 잡지 책 등을 두루 참고해 시의성있는 법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해외 포교에도 눈을 돌려 내년부터 해외 포교사를 양성하는 대학 건립을 추진해 많은 인재들을 배출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불교 바람이 일고 있지만 온통 라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계종도 스님의 영어 교육에 힘쓰고 조직적인 해외 포교에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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