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한국서 첫 개인전 연 비디오 아트 거장 빌 비올라

  • 입력 2003년 4월 1일 18시 17분



이른바 ‘비디오 아트’로 구분되는 국내의 일부 작품들을 볼 때 감동보다는 ‘어색함과 어긋남’을 먼저 느끼곤 했다. 그들의 실험성과 열정을 폄하할 뜻은 없으나, 그동안 접했던 대다수 작품들은 열정만이 넘쳐 테크놀로지를 과시나 포장도구로 전락시키거나 혹은 그것에 휘둘려 차가운 불편함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삶의 고뇌-슬픔 영상에

비디오는 1970년대 초반에나 혁명적인 매체였다. 영상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인터넷의 등장은 “미술가들은 이제 비디오를 연필처럼 사용할 것”이라는 70년대 존 발데사리(미국)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디오를 낡은 매체로 밀어내고 있다.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1세대인 ‘빌 비올라’전을 보기위해 소격동 국제 갤러리로 향하면서 마음 속에는 이같은 섣부른 예단과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1995년)의 수상 작가라는 세계적 명성에 대한 기대가 엇갈렸다.

그러나, 그와 인터뷰하고 8개 작품을 둘러본 뒤 전시장을 나오면서, 그의 명성이 과장이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작품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보인 것 이상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본도, 대형 스크린도, 첨단의 스피커 없이도 영화 이상의 감동을 주는 그의 작품을 통해 미술매체로서의 비디오 아트의 ‘힘’을 수긍하게 되었다.

빌 비올라는 연필과 붓을 마음대로 쓰면서 탁월한 데생력을 자랑하는 기량있는 화가처럼 미디어 장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첨단 카메라와 플라즈마, LCD 화면을 이용한 선명하고 정밀한 영상은 작가가 얼마나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유자재한 컨트롤을 갖고 있는 지 보여 주고 있었다. 이같은 하드웨어는 삶과 인간에 대한 정직하고 내면적인 사유라는 소프트웨어와 절묘하게 화합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비디오라는 매체가 기계적 차가움이 아닌 피와 살이 흐르는 감동과 평안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전시장의 관람객들은 작품과 겉돌지 않고 자연스럽게 묻힌다는 느낌을 받는다.

# “예술은 영혼의 눈물”

빌 비올라의 화면은 잘 그린 한편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죽음과 생의 의미를 통찰하고 있는 ‘Study for the Voyage’. 사진제공 국제갤러리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작가는 젊은 시절 섭렵했던 기독교, 불교의 선종, 이슬람의 수피교 등 다양한 영적 체험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불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80년대 초 1년간 일본에 살 때는 선종(禪宗)의 대가인 다이엔 타나카로부터 직접 교리와 수행법을 배웠다. 그는 요즘도 시간날 때마다 선수행을 한다. 왼쪽 손목에 보리수 염주를 차고 있었으며 서울에 머무는 5박6일의 짧은 일정 속에서도 일부러 짬을 내 성북동 길상사를 다녀왔다.

이런 불교적 사유는 작품의 일관된 주제가 되고 있다. 중년 여성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 섬세한 감정 변화를 표정으로만 보여 주는 ‘Remembrance’나 한 줄로 선 여덟 명의 생활인들이 돌아가며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에 대해 비통함을 표현하는 ‘Observance’에 흐르는 주제는 ‘괴로움’, 다시 말해 ‘고(苦)’다.

‘슬픔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당신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괴로움은 괴로움으로 정화된다. 눈물처럼 말이다. 눈물은 슬플 때 흐르지만 눈물을 흘림으로써 슬픔은 가라앉는다. 예술은 눈물처럼 우리 영혼을 정화(淨化)시키는 것이다.”

21세기 첨단 장비를 가지고 촛불하나에 의지해 13세기 중세화를 보는 듯한 효과를 만든 ‘Unspoken’도 눈에 띈다. 한 마디로 그의 시도는 ‘전통과 현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행복한 결합’이다. 벌써부터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온 관람객들이 하루 평균 250여명씩 몰려 갤러리측은 개관이후 가장 큰 성황을 누리고 있다. 30일까지. 입장료 학생 2000원, 일반 3000원. 02-735-8449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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