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범신 그림 박아름 산문집으로 만난 父女

  • 입력 2003년 4월 1일 19시 14분


소설가 박범신(왼쪽)과 그의 딸 박아름. -변영욱기자
소설가 박범신(왼쪽)과 그의 딸 박아름. -변영욱기자
“다른 사람이 보기에 평범한 문장일 수도 있겠지만 전 아버지의 글을 읽으면서 굉장히 슬픈 경험과 기억, 고통을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덤덤하게 쓰셨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울컥할 때가 많았어요.” (딸)

“내가 가진 느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아름이 너는 너무 젊단다. (웃음) 그러나 네가 그린 그림 한 컷 한 컷이 글을 바르게 읽고 있는 것 같구나. 이 작업을 통해 서로 더 가까워지고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아버지)

1993년 절필선언 이후 경기 용인시에 ‘한터산방’을 마련한 소설가는 10여년간 그곳에 머무르며 자연 사람 문학 가족 인생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용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딸에게 원고를 건네며 “네가 그림을 그려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뒤늦게 그림공부를 시작한 딸과 산문집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룸)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술하는’ 아버지와 딸이 모처럼 집 밖에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소설가 박범신(57)의 명지대 연구실로 딸 아름씨(28)가 찾아왔다.

“미술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강렬한지 몰랐다. 조금 늦었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알고 그 속에서 행복해 하는 네 모습을 보니 너무 좋아. 아빠 책이어서 어쩌면 민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디자인을 할거야’라고 세상에 알린 셈이 아니겠니.” (아버지)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창피했어요. 더 잘할 걸,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미련도 생기고요.” (딸)

“예술가는 발가벗겨져서 시청 앞에 내던져지는 것 같은 기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해. 지난 30년간 해 온 일을 돌이켜보니 고통스러웠지만 내 지향 하나를 품고 걸어온 것이 위로가 되더라. 그래서 일상화에 매몰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 면에서 문학이 내 ‘방부제’인 셈이지.” (아버지)

지난해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아름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 학사편입해 요즘 디자인 공부에 한참 빠져 있다. 아버지는 딸이 겪어야 할 예술가로서의 삶과 그에 동반하는 창작의 고통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내가 요즘 농반 진반으로 ‘다시 태어나면 아버지 안 될래’라고 이야기하는 것, 너 아니? (웃음) 치열한 세상 속에서 너희들이 살아 나갈 생각을 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연민이 든단다. 네가 잠시 힘들어서 졸업하고 그냥 취직이나 해버릴까, 마음 흔들린 적도 있는 거 알지만 아버지로서 모든 것을 시시콜콜 아는 체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버지)

“책 작업을 하면서 덜컥 겁이 났어요. 내가 아버지만큼 내 분야에서 잘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모두 아버지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었지요.” (딸)

이들은 책을 통해 아버지와 딸이 한 대등한 인간으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이번 작업의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따뜻해지는 방법을 찾은 아버지’와 ‘속 깊고 믿음직스러운 딸’의 이야기는 한참이나 계속됐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는 박범신은 곧 장편소설과 시집을 출간하며, 이달 중순경 제자들이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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