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반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이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는 비단결 같이 부드럽고도 반짝반짝 빛나는 특유의 현악합주 질감을 마음껏 과시했다. 이 유려한 음색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안넨 폴카’ 등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고유의 레퍼토리에서 더욱 빛을 발했으며 확성장치를 사용한 불완전한 음향 조건 아래서도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평선 위 적절한 높이에 떠 있는 듯한 호른 등 금관의 푸근한 질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차분한 사운드는 ‘황제 왈츠’에서 청중들을 19세기 말 빈 상류사회 특유의 낙관적 분위기에 아늑하게 휩싸이도록 이끌었다.
여기에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반 프라이’ 폴카에서 지휘자 주빈 메타가 기차 경적을 흉내낸 악기를 직접 불어대는 등 눈요깃거리도 풍성했다. 장영주도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에서 특유의 날렵한 명인기(名人技)를 충분히 입증하며 객석을 환호 속으로 몰아넣었다. 메타가 붉은 셔츠를 입고 지휘한 월드컵송 ‘챔피언스’도 기대 이상의 팬서비스였다.
그러나 진행에 있어서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오후 7시반으로 예정된 콘서트는 10분 이상 늦게 막이 올랐고 사회자의 도입 코멘트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연주는 8시에야 시작됐다. 사회자는 독일어 정관사 ‘Die’를 ‘디’가 아닌 영어식 ‘다이’(죽다)로 발음했고 지휘자 메타가 “3테너 콘서트로 유명해졌다”고 소개하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내한 첫 무대에 대해서는 여러 관객이 “지난 두 차례의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장영주가 협연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관악기들은 서로 충분히 대화하는 느낌을 주지 못해 선율이 종종 끊겼다. 말러 교향곡 1번에서는 육중한 금관군의 음량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다. 걷는 듯한 템포의 1, 3악장에서도 박자가 명쾌하게 찍히지 않고 악기군간에 일부 흐트러지거나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정상급은 정상급과 비교해야 한다’는 비평의 원칙을 상기하자면 장영주의 솔로 역시 2000년 정경화가 산타체칠리아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들려준 같은 곡에 비해 예민함이 떨어지는 연주였다. 활 끝의 유려한 음색이 100% 살아나지 않았으며 특히 1악장에서는 일부 비브라토(왼손을 떨어내는 음)의 과도한 사용도 엿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지휘자 메타의 리드가 ‘자상하지’ 않은 데도 이유가 있는 듯이 보였다. 이따금 현의 합주에 독주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배려하지 않아 호흡이 끊기는 모습도 노출됐다.
한 음악계 인사는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빈에 오래 거주한 브람스의 협주곡 연주에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고 이번에도 그 징크스는 깨지지 않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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