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관 KBS이사장 인터뷰]"대통령이 주변서 인물찾는게 문제"

  • 입력 2003년 4월 3일 20시 42분


《KBS 지명관(池明觀·사진) 이사장은 서동구(徐東九) 사장이 전격 사퇴한 2일 밤 경기 안양시 평촌 자택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사장 선임 과정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들은 적은 없지만 집권당 인사 등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와 사실상 인사 추천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지 이사장은 “이번만큼은 노조와 사장, 이사회가 함께 상호 협력하는 전통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파국으로 끝나 참담한 심경”이라며 “현 이사회는 임기가 한 달여밖에 안 남았으므로 새 사장은 새 이사회가 구성돼 ‘공개 추천’ 방식으로 뽑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과 인사스타일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대통령이 각양각색의 인재를 쓰지 않고 주변에서 인물을 찾는 게 문제이며 특정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사장이 1일 오후 지 이사장을 찾아온 이유는….

“전임 박권상 사장은 다른 역할은 잘했는데 노조와의 관계를 잘 풀지 못했다. 이번에도 서사장이 취임하는데 노조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자 3월23일 서 사장과 만나 ‘이사회가 앞장서 노조와의 갈등을 해결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서 사장이 이를 거절하고 ‘내가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청원경찰까지 동원해 출근한 뒤 1일 나에게 연락도 없이 찾아와 ‘문제가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 무섭다. 도와 달라’고 했다.”

―이사회에서 서 사장을 선임하는 데에 외압은 없었는가.

“이사들이 각자 양식에 따라 판단했다. 이사들이 어차피 KBS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니까 새 정부와 친한 사람을 뽑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다수가 서 사장을 뽑은 것 같다. 또 이사들이 ‘국민추천’ 과정에서 개별적인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여러 군데서 추천을 받았다. 집권당을 비롯해 사방에서 연락이 왔고 만나기도 했다.”

―대통령이 국회 발언에서 ‘서동구씨 추천’이나 ‘노조의 뜻을 존중했으면 한다’는 등의 의견을 이사회에 간접 전달했다고 하는데….

“이번 선임 과정에서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고 대통령의 뜻이라고 전달받은 것도 없다. 대통령의 뜻이 중간 참모를 통해 전달됐다면 그 과정에서 왜곡됐을 수도 있다. 차라리 이번에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사회 사장 선임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요즘 ‘국민추천’ 방식이 유행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도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후보가 될 수 없다. 또 서류만 보고 뽑으려니 일부 이사들은 사장 후보자 중 몇몇에 대해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다수결 투표로만 결정하니 ‘밀실인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차라리 최종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하는 등 공개적인 검증방법을 사용했으면 한다.”

―노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통령이 국회에서 ‘족벌언론’이란 표현을 썼는데 바람직하지 못하다. ‘편집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언론사의 소유문제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개혁은 신문사가 자율적으로 해야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7000만 대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보수언론과도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대통령이 언론의 피해를 보았지만 언론의 도움을 받은 적도 많다. 언론을 ‘적’으로 만들면 어떻게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인가. 언론이 서로 갈등하기보다는 함께 상생(相生)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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