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오른쪽 대뇌 손상때 '무시증세'

  • 입력 2003년 4월 6일 18시 04분


52세 여자 환자 P씨는 어느 날 갑자기 왼쪽 팔, 다리가 마비됐다. 그녀의 오른쪽 대뇌에 뇌중풍이 생긴 것이다. 오른쪽 대뇌가 손상되면 흔히 ‘무시 증세’가 생긴다. 즉 환자는 마비된 팔, 다리를 무시하고 전혀 여기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P씨 역시 이러한 무시 증세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마비된 팔을 자신의 손자인 줄로 알고 있었다.

검사자:(환자의 왼쪽 팔을 가리키며) 이 팔 괜찮습니까 ?

환자:얘는 불쌍하고 멍청해요. 움직이지 못하니까.

검사자:얘 이름이 뭔데요?

환자:‘진성이’(손자 이름), 아니 참 ‘바보’.

검사자:왜 바보죠?

환자: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야 이 녀석아 움직여. 너 말 안들을 거야 ?

이처럼 마비된 팔, 다리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현상을 ‘의인화’라고 한다. 하지만 팔, 다리를 다른 사람의 팔로 생각하는 환자도 있다. 예컨대 ‘이것은 내 팔이 아니라 아들의 팔’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어떤 환자는 소매 속에 자기 팔과 아들의 팔이 함께 들어 있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은 마비된 팔, 다리에 사람 이름이나 별명을 붙이기를 즐겨 한다. 별명은 ‘놈팽이’, ‘바보’ 같은 부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팔, 다리를 가리키며 ‘멍청하다’, ‘때려주고 싶다’, ‘보기 싫다’ 등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혐지증’이라고 부른다.

이런 의인화 증세는 매우 드물다. 미국의 커팅이란 의사가 조사해 보니 오른쪽 대뇌 손상이 있는 환자 100명 중 1명만이 의인화 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 중 한 명은 자신의 마비된 다리와 팔에 각각 ‘프레드’, ‘작은 프레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P씨의 경우처럼 이런 의인화 현상은 마비된 팔, 다리에 대한 무시현상이 거의 항상 동반된다. 아마도 의인화는 무시현상과 함께 생기는 망상 증세인 듯하다.

환자로서는 마비된 자신의 팔, 다리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괴로운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의 팔, 다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것 같다.

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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