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한 3일 정도는 조연출과 배우들이 잘 알아서 연습해 줄 것”이라고 ‘일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슬픔을 감췄다.
2000년 초연 돼 평론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올랐던 ‘대대손손’이 소극장 무대를 떠나 700석 규모의 대 극장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맞는다. 박근형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이번 공연은 결국 그의 어머니 영전에 바치는 작품이 됐다. 2001년에 이어 2년만이자 세 번째 공연. 소극장 연극이 큰 극장으로 옮겨 성공한 예가 별로 없던 터라 연극계도 잔뜩 촉각을 곤두세운채 주시하고 있다.
박근형은 “무대가 커지면서 공간 활용의 폭이 넓어졌다”며 “무대 뿐 아니라 연극 전체의 스케일이 큰 작품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등장하는 배우 수도 이전의 13명에서 21명으로 늘었다. “등장 인물이 많아지면서 연극의 ‘배경’을 좀더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이전의 공연에 비해 이번 연극에서는 우리의 현실과 맞닿는 요소를 많이 넣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대손손’은 조씨 일가 4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현재의 서울과 30년대의 함북 청진, 40년대의 일본, 70년대의 베트남을 오가며 진행되는 연극은 ‘나’와 나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에피소드를 통해 한국의 근, 현대사를 되짚는다. ‘나’의 아버지는 베트남 여인을 임신시킨 뒤 도망친 전력이 있는 베트남 참전 군인. 할아버지는 일본인 여인과의 사이에 아버지를 낳았고, 그 할아버지는 증조 할머니가 일본인과의 불륜을 통해 낳은 자식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출세를 위해 이를 알면서도 외면했다.
이렇게 그다지 밝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은 ‘우리의 과거’를 유쾌한 웃음으로 풀어낸 것이 연출가 박근형의 역량이다. 그는 동아일보가 조사한 ‘프로들이 뽑은 우리 분야 최고’에서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연출가’로 뽑히기도 했다.
이번 연극에서는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박해일이 최정우, 김세동 등 중견 연기자와 호흡을 맞춘다. 19일부터 5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2만원∼3만원. 02-580-1300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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