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바그다드가 바로 신밧드의 정착지였다. 테헤란에서 카이로에 이르는 아랍권 거의 대부분이 ‘천일야화(千一夜話)’ 또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로 되어 있지만, 이 수많은 이야기들의 기본적인 골격은 바그다드가 있는 유프라테스강 연안에서 만들어졌다.
러시아인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천일야화’를 교향곡과 비슷한 4악장 관현악곡으로 꾸며 ‘교향모음곡 세헤라자데’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것은 1888년. 이보다 앞서 그의 친구인 보로딘은 1880년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라는 교향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음악가들의 관심사가 오늘날 ‘∼스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남쪽의 스텝지역으로, 이어 이슬람권의 중심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당시 제정러시아의 남진정책 및 확장정책과 관계가 있다. 당시 중앙아시아의 패자였던 터키의 세력은 퇴조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지식인들의 화제에서도 이슬람권이 큰 부분을 차지했던 모양이다. 러시아의 정치적인 꿈은 중앙아시아를 영유하는 데서 그쳤지만 음악가들의 꿈은 오늘날 주옥같은 관현악곡의 명편으로 남았다.
‘세헤라자데’는 특히나 관현악에 쓰이는 여러 악기의 독특한 효과를 한치의 오차 없이 활용할 수 있었던 코르사코프의 재주가 유감 없이 발휘돼 있다. 1악장 ‘바다와 신밧드의 배’에서 뱃전을 위협하며 우르릉대는 바다의 묘사, 2악장에서 적막한 초원지대를 묘사하는 듯한 고적한 바순의 독주, 오늘날 광고음악으로도 각광을 받는 3악장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의 유려하기 그지없는 현악 선율 등 그 무엇이든지…. 굳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의 한 형태라고 보자고 하면 그 또한 틀리지 않겠으나, 우리는 CD 한 장으로 꿈결같은 아랍 여행을 체험하고도 남는다.
LP시대에 이 작품의 전설적인 명연은 토머스 비첨 지휘 로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EMI·1957 녹음)였다. 현과 목관에서 탐미적이며 유려한 감각을 한껏 뽑아낼 줄 알았던 ‘호사가적’ 지휘자 비첨의 장기가 마음껏 발휘된다.
러시아의 ‘민족주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자신의 악단인 마린스키 극장 키로프 오케스트라와 함께 최근 새 앨범을 내놓았다(필립스·2002 녹음). 게르기예프의 연주 중에서는 다소 개성이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탄탄하고 견실한 음향을 넉넉히 펼쳐낸 역연으로 꼽을 만하다. DVD기술을 적용한 고음질CD인 ‘슈퍼오디오CD’ 플레이어 겸용으로 제작됐으며, 일반 CD플레이어에서도 사방을 감싸는 서라운드 음향을 만끽할 수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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