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음악제’로 2000년 출발한 뒤 네 번째, 국제음악제로 개칭하고 두 번째인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여러 면에서 괄목할 성장을 거두었다. 세계적 연주가와 연주단체의 참여뿐 아니라 프린지(주변부)축제 프로그램인 ‘윤이상 교가합창제’에 쏟아진 시민들의 관심과 환호 등 행사의 내실과 관심도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 안팎의 평.
이러한 축제의 성공 뒤에는 99년 축제가 처음 기획될 때부터 모든 행사에 자기 일처럼 땀흘리며 뛰어다닌 ‘일중독자’들의 노고가 숨어 있었다. 통영국제음악제 운영위원인 김승근(36·서울대 국악과 교수) 김일태씨(46·마산MBC 편성국 부장대우)가 바로 그들이다.
주빈 메타 지휘의 빈 필하모닉의 명연주에 관객이 환호를 보내고 있는 순간 통영시민문화회관의 무대 뒤에서는 두 사람이 손을 마주잡고 서 있었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뭘…김형이야말로 이젠 좀 쉬시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99년 5월. 통영문화재단 주최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 ‘윤이상 가곡의 밤’이 계기가 됐다. 독일 유학 중 윤이상을 알게 된 김승근씨는 국제윤이상협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가곡의 밤’ 기획에 참여했고, 한 해 전에 대작곡가 윤이상의 생애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김일태 PD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행사 뒤 두 사람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윤이상의 예술을 기념할 방안을 논의했다. ‘음악제’를 창설한다는 데는 쉽게 의견이 일치했다. 문제는 뛰어다니며 ‘일을 만들어갈’ 실무 책임자였다.
“당시만 해도 ‘윤이상’을 대작곡가가 아닌 사상범으로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지역 관공서 등 관련단체를 찾아다니며 지원을 약속받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김 PD님이 지역과 관련된 험한 일을 다 맡아주었죠.”(김승근)
“아닙니다. 진짜 험한 일은 사무국장을 맡아온 김승근 교수의 몫이었습니다. 중요한 프로그램 결정이 다 그의 손을 거쳤어요. 그는 1000원짜리 지출 결제까지 일일이 챙기며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었죠.”(김일태)
그렇게 4년. 음악제는 매년 쑥쑥 커나갔다. 최초 5000만원으로 시작한 예산은 15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국제음악제로 격상하면서 음악제도 법인체제를 갖췄다. 예술의 전당 이사장 임기가 끝난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 본격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6년 새 축제극장이 완공되고 국제적 기준에 걸맞은 체계적인 프로그램 구성이 이뤄지면 통영은 ‘세계의 명소’로 떠오를 것이라고 두 사람은 자신했다.
“우리 둘이 한 일이 아닙니다. 통영시와 경남도, 마산MBC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시민 자원봉사단인 ‘황금파도’는 어떻고요. 행사 자료를 제작 배포한 월간 객석, 해외 1급 연주단체 초청에 앞장서준 주한독일문화원…. 모두가 축제의 은인들입니다.”
바쁘게 뛰는 와중에서도 김승근씨는 올해 서울대 전임강사로 자리를 잡아 ‘교수님’이 됐다. “이제 ‘보통’ 운영위원으로 돌아갑니다. 축제도 성공적으로 정착됐고, 둘이 뛰어다니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졌죠. 그렇지만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 기념축제를 맞는 2017년까지만이라도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축제에 쏟아 붓고 싶습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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