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사에 따르면 이 시대에 특히 사망률이 높았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22세에 불과해 영국의 인구는 오랫동안 900만 명 수준에 맴돌고 있었다. 이렇게 사망률이 높았던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유아 사망률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유아가 탄생해 1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50%도 되지 못했다. 이 와중에 현재 지구촌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전염병(Epidemic)이 한번 유럽대륙을 휩쓸면, 예방의술의 미비와 허술한 위생환경으로 인구는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누의 사용은 출산시 유아 감염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18세기 이후 인구 증가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이 결과 영국은 도시화라는 사회제도의 변화와 증기기관의 발명이라는 기술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력의 공급이 원활하게 됐다고 한다. 뜻밖에도 유럽국가 중 최초로 비누를 사용한 영국이 18세기 산업혁명을 선도하게 된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이웃 일본은 ‘로봇’의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일본의 노력은 기업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이미 소니는 ‘아이보’라는 애완용 로봇을 개발 시판한데 이어 자동차 회사인 혼다는 지난 15년간 로봇 개발에 주력해 최근 ‘아시모’라는 키가 160㎝에 이르는 인간 로봇을 소개했다. 그리고 혼다는 앞으로 가사를 완벽하게 수행할 가정부 로봇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왜 일본기업들이 로봇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일본 기업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같은 소프트웨어 등 지식 중심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기업들은 인구의 노령화로 가전, 자동차, 조선 등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 알다시피 현대 일본은 세계 최고의 노령사회에 진입했다. 70년 이후 낮은 출산율에다 식문화와 의학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낮은 사망률 덕에 일본은 선진국 중 가장 짧은 기간인 24년 만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3%를 넘었고 2050년경에는 인구의 반이 노인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기존 제조업의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 인력부족을 대체해 줄 로봇 개발에 주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실로 18세기 인구 증가에 따른 대량생산 체제의 탄생이라는 산업혁명의 길을 연 ‘비누’의 역할을 21세기 고령화된 일본에서는 ‘로봇’ 기술이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앞에서는 일본에 견제 당하고 뒤에서는 인력이 넘쳐흐르는 중국의 급격한 추월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경제가 앞으로 아무리 숨가쁘게 개혁한다 해도 이른 시일 내에 미국식의 지식경제 체제로 전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구구조를 보면 더더욱 걱정이 앞선다. 이미 우리의 출산율은 2001년 기준 1.3명으로 일본, 독일, 미국 등 선진국보다 낮아졌다. 현재 평균수명도 74.9세로 70년 63.2세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노령화 추세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 한다. 64세 인구비중이 14%에서 20%에 도달하는 시간이 일본은 12년이 걸렸으나 앞으로 우리는 7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우리 정부는 출산율 장려에 나설 것이란다.
그런데 불행히도 경제학에서는 유아를 열등재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 소득이 증가할수록 부모들은 유아보다는 여가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요즘에는 육아와 교육에 드는 비용이 날로 치솟고 있어 정부가 어떠한 유인책을 내놓더라도 출산율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제 우리도 앞으로 상당기간 기존 제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식으로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쓰든지, 일본식으로 로봇 개발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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