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5대도시 부모가 찾는 ‘내 자녀 배우자감’

  • 입력 2003년 4월 10일 16시 49분


#지방에 사는 A씨(60)는 사법 연수원 2년차인 아들(29)의 결혼 상대자를 찾고 있다. 며느릿감은 법조계 인사면 가장 좋겠지만 의사나 한의사 약사까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산부인과 의사나 약국의 관리약사는 싫다. ‘정 없으면’ 교사나 방송사 근무자까지 가능하다. 반드시 전문직이어야 한다. 직업 외에 뚜렷이 보는 것은 없는 편이다. 학교는 ‘이류 이상’이면 괜찮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인품 좋은 사람 정도…. 아들은 176㎝에 보통 체격으로 남자답고 미남이라는 게 아버지 A씨의 생각이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B씨(30)는 4년 전 결혼해 시가에 들어가 살았다. 그는 결혼 한 달만에 집에서 도망 나와 8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의 이혼 사유는 시아버지의 매.

B씨는 경기도에 있는 시가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나 걸리는 직장까지 출퇴근했는데 엄격했던 시아버지는 통금시간을 오후 9시로 정해놓고 1분이 초과될 때마다 회초리를 들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직장생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이해해 주지도 않았다. 남편은 그런 시아버지로부터 아내를 감싸주지 못했고, B씨는 집을 나왔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관련된 결혼과 이혼 풍속도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부모가 바라는 며느리 또는 사윗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결혼하면 며느리는 가사를 돌봐야 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요즘은 맞벌이 며느리를 선호하는 추세다. 특히 전문직 여성을 원하는 시부모가 늘면서 특정 직업만 고수하거나 특정 직업을 배제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사윗감으로는 대기업 직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부모와 관련된 불화로 이혼하는 경우도 비례해서 늘고 있다. 며느리의 늦은 귀가를 용납하지 못하거나 딸보다 돈을 못버는 사위가 못마땅한 경우가 많아진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부모 자녀 갈등관계인 ‘고부 갈등’을 넘어서 ‘영원히 같은 편’으로 분류됐던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이 이혼의 주된 이유로 등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 맞벌이 며느리가 좋다

결혼정보업체 선우는 최근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서울 등 전국 5대 도시 부모 330명이 밝힌 ‘자녀의 이상적인 배우자 상’을 분석했다. 이 업체에 전화 등으로 부모들이 문의해 온 내용을 분석한 결과 아들을 둔 부모의 43.6%가 맞벌이 며느리를 원했다. 맞벌이를 원하지 않는 부모는 6.4%에 불과했으며 50%는 둘이 알아서 결정할 일로 봤다. 결혼하면 며느리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풍조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들 부모에게 며느리의 조건 가운데 성격을 제외하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지 질문했다. 그 결과 직업(25.3%), 외모(23.4%), 집안 분위기(10.4%), 학력(5.8%) 순으로 조사됐다. 전문직 며느리를 원하는 비중이 38.4%로 가장 높았으며 약사, 교사, 미용사 등으로 며느릿감의 직업을 콕 찍어서 원하는 부모도 많았다.

딸을 둔 부모도 자신의 딸이 맞벌이에 나서기를 원하거나(37.4%) 둘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51.5%)를 취했다. 여성의 직장생활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자아실현’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성격을 제외한 사위의 조건으로는 직업(45.6%) 경제력(35.7%) 등 경제적인 부분이 우선 순위를 차지했다. 외모는 0.6%로 가장 낮은 비중이었다.

다음은 결혼정보회사의 실제 상담 사례를 그대로 옮겨 본다.

전직 공무원인 어머니 C씨(66). 신장 180㎝, 78㎏, O형, 인상 좋은 아들(28)의 신부감을 문의. 맞벌이 희망. 아들은 외국 영주권자로 외국에서 직장생활 중. 여성은 모 여대 이상 나와야 함. 교수 집안이라 강의 나가는 사람이면 좋겠음. 고등학교 교사까지 OK. 예체능 기피.

교사인 아버지 D씨(51). 180㎝에 보통 체격인 아들(30)의 신부감 문의. 직업군인 발령대기 상태로 직업은 미용사 또는 의사 희망. 연상이라도 별 상관하지 않음. 서울에 140평짜리 집이 있고 상가, 시골 땅 등을 갖고 있음. 여성은 학력이 중졸이거나 고졸이어도 상관없지만 직업의식이 뚜렷하고 착한 사람 원함. 부인이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어 며느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함.

49세 어머니 E씨. 올해 음대를 졸업한 딸(25)의 상대자로 서울의 중·상위권 이상 대학 졸업자 원함. 의대일 경우는 지방대도 가능(병원이 지방이 아니라면). 전문직 선호. 특히 의사(치과의사, 한의사 포함) 변호사 회계사도 좋음. 나이는 6, 7세 차이까지 괜찮고 기독교 신자라 종교가 없는 것은 괜찮지만 불교신자라면 곤란.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어머니 F씨(52). 사윗감 직업이 ‘하다 못해’ 약사 정도는 돼야. 행정고시를 패스한 사람이 가장 좋음. 대기업 사원 등 일반직은 별로. 언제 명예퇴직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 딸(27)은 모 여대 경영학과를 나와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월 2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고 있음.

● 부모와 갈등으로 이혼한 사례

한의사 G씨(37)는 2001년 음대를 졸업한 아내를 맞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다. 그러나 결혼 초부터 그런 꿈은 부서졌다. 가정 형편상 신혼집을 아내가 마련했는데 바로 처가 옆이었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장모가 늘 집에 와 있었다.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해도 장모가 끼어 들었으며 집안의 모든 결정은 장모가 했다. B씨는 결혼 6개월만에 이혼했는데 이혼을 결정할 때도 아내가 아니라 장모와 대화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직장인 H씨(35)도 장모와의 갈등으로 이혼한 사례. 그는 대학시절부터 5년 동안 연애한 뒤 98년 결혼했다. 맞벌이 부부였던 H씨의 집안살림은 장모가 도맡아 했으며 장모는 “평범한 남자를 만나서 딸이 고생”이라며 늘 불만이었다. 아내의 연봉은 H씨보다 훨씬 많았다. H씨는 장모에게 용돈을 주려고 했지만 장모는 받지도 않았다. 그는 지난해 3년 10개월의 결혼생활을 접었다.

이혼의 사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성격 차이’가 가장 많지만 ‘가족간 불화’도 상당히 높은 비율로 조사된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가족간 불화는 이혼 사유의 14.4%로 2위를 차지했다.

결혼정보회사들에 따르면 재혼을 의뢰해 온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부부가 이혼한 경우 15∼20%가량이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컨설턴트들은 “직장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면서 신혼집을 친정 가까이에 마련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장인 또는 장모가 딸의 결혼생활을 간섭하는 요인이 되고 이 때문에 사위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분석했다.

전국 5대도시 결혼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 330명 전화 문의 분석. 자료:선우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