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119와 같다. 아니 자기 일을 가지고 있고 결혼한 한국 여자들은 거의 다 119 소방대원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단 하루도 사이렌 소리를 듣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드물고, 사이렌이 울리면 바로 불 끄러 달려나가야 하는 한국 여성들. 그러니 그들에겐 ‘바쁘거나 아프거나’ 두 가지 현실밖에 없는 셈이다.
시인 김승희씨는 ‘죽어도 엄마처럼 살지 않을 테야’라는 ‘엄마 부정 선언’의 첫 세대를 자임하며, 늘 그랬듯이 이 책에서도 에둘러가지 않고 곧바로 가슴속에 담긴 말을 쏟아낸다.
강렬함과 도발적인 점에서는 화가 윤석남씨도 마찬가지다. ‘버려지고 불태워졌지만 아직도 그들은 퍼얼펄 살아 있다’는 설명이 담긴 표지 그림부터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의 드로잉, 빨래판과 의자 등을 이용한 독특한 설치작업은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눈으로 봐도 뭔가 절절한 느낌이 와 닿는다.
그 김승희와 그 윤석남이 만났다.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는,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이름에 걸맞은 짱짱한 실력을 가진 두 사람. 32편의 산문과 41편의 미술작품의 행복한 만남을 이뤄냈다.
제목 그대로 여성에 관한 이야기로, ‘엄마와 딸, 그 치명적 사랑’ ‘제도 속의 여성’ ‘여성으로서의 글 읽기’ 등으로 구성됐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분노, 고통과 힘 등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이 책의 결론은 희망이다.
‘많은 여성이 처음엔 딸이었다가 나중엔 어머니였다가 그 다음엔 할머니가 된다.’ 두 여자는 그 과정의 한 자리, 한 과정에 있다는 것에 대해 ‘무궁한 애정과 피로와 빛나는 긍지를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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