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상반된 두가지 호르몬의 마술

  • 입력 2003년 4월 13일 17시 56분


“우리는 식욕을 느끼고 즐겁게 맛을 보지만 음식을 넘기는 직후부터 맛을 모르게 된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이처럼 욕망이 덧없는 까닭은 세상 자체가 비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신경계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 위장관이 팽창하고 이렇게 되면 반사적으로 위장관에 분포된 신경세포의 조절에 따라 콜레시스토키닌이란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혈액을 타고 뇌로 올라가 뇌의 식욕중추를 자극하여 포만감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결국 식욕을 줄인다. 이와 반대로 역시 위장관에서 분비되는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은 배가 고픈 상태에서 혈액 속에 증가하고 음식을 먹으면 금방 줄어든다.

이 두 가지 호르몬의 상반된 작용에 의해 배가 고플 때는 식욕이 생기고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식욕이 줄어들게 된다.

콜레시스토키닌과 그렐린이 짧은 기간의 식욕과 관계되는 데 반해 장기적으로 식욕조절을 하는 메커니즘이 따로 있다.

이자와 지방조직에서 각각 분비되는 인슐린과 렙틴은 신체에 저장된 지방의 양의 정도에 따라 혈액 속으로 분비된다. 이들은 일단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면 식욕을 억제하고 혈액에 있는 영양분을 세포가 사용하도록 한다. 만일 저장된 지방이 줄어들면 이러한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고 그 줄어든 정도는 뇌의 식욕중추가 인식해서 식욕을 증가시킨다.

이런 식욕조절 호르몬들이 작용하는 뇌의 시상하부에는 식욕을 촉진하고 억제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신경세포군이 있다.

촉진세포군은 NPY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억제세포군은 멜라노코르틴이라는 펩타이드를 분비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식욕을 조절한다.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을 이용하여 비만을 치료하려는 노력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배터르함 교수가 창자에서 발견한 PYY라는 물질은 구조가 NPY와 비슷하지만 NPY와는 정반대로 12시간 정도 지속되는 강력한 식욕억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생리적 역할에 관해서는 좀 더 연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PYY는 비만 환자의 식욕억제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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