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저녁 열린 로린 마젤 초청 서울시 교향악단 연주회는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집중적인 조련을 치러낸 현악부는 유럽 상급 악단이 낼 수 있는 치밀한 질감을 선보였다. 금관은 차이코프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에서 다소 템포가 뒤쳐졌지만 금관주자들의 역량을 남김없이 뽑아내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서는 흠을 잡기 힘들 정도로 강건하고 정밀했다.
욕심을 내자면 그 이상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서는, 현의 치밀한 질감을 넘어 한 사람의 육성처럼 객석을 감전시키는 ‘진실의 순간’이 예기치 않게 불거져나올 수도 있다. 금관도 ‘잘하는군’이란 객관적 관찰을 넘어 가슴에 묵직한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서울시향이 여기에 이르지는 못했다. 굳이 욕심을 낼 것은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은, 굳이 마젤이 필요했느냐는 것이었다. 1999년, 서울시향은 정치용 전 상임지휘자의 지휘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을 연주한 일이 있다. 당시 관객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서울시향은 완벽한 합주력을 선보였다. 13일 연주회가 당시와 크게 다른 차원의 연주를 들려준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날 첼리스트 장한나가 들려준 차이코프스키 ‘로코코 변주곡’은 완전히 연주자의 몸과 손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녹음 엔지니어라면 편집없이 ‘한컷’에 만족할 것이다. 한 가지 불만은 ‘이제 장한나가 연주하는 다른 곡을 듣고 싶다’는 것 정도였다.
템포 강약 등에서 자의적 해석이 심해 ‘신주관주의적 지휘자’로 불려온 마젤은 이날도 ‘변칙 스타일’의 해석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앙코르 첫 순서로 연주된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에서 그의 주관성은 최고에 달했다. 전체를 완전히 ‘피아노’로 숨죽이게 했다 순간적으로 되살리는 그의 강약지시는 작곡자의 악보 지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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