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산소'…과학 뒤에 뒤엉킨 인간의 욕망 그려

  • 입력 2003년 4월 15일 17시 47분


사진제공 MoA
사진제공 MoA
1772년 산소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스웨덴의 셸레, 1774년 산소를 발견했다고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한 영국의 프리스틀리, 1783년 그 화학적 성질을 최초로 파악한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당시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누가 수상자가 돼야 할까?

198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알드 호프만과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과 교수인 칼 제라시는 화학사에 있어 대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 흥미로운 사건을 토대로 직접 희곡을 썼다.

노벨상 100주년인 2001년, 노벨재단은 노벨상의 제정 이전에 이뤄졌던 최고의 위대한 발견에 대해 ‘거꾸로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하고 선정위원회를 구성한다. 무대는 2001년 스웨덴의 위원회와 1780년대 유럽의 세 과학자들 사이를 오가며 두 시기에 진행되는 이 논쟁을 동시 생중계한다.

‘과학자가 직접 쓴 과학연극’을 표방해 딱딱하고 어려울 듯도 싶지만 작품의 주제는 연극의 영원한 화두인 ‘인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객관성을 표방하는 과학의 이면에는 과학을 지배하는 인간이 있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이 있다. 자연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의 ‘열정’과 최초의 발견자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욕망’ 사이의 충돌이 극의 흐름을 끌고 간다.

연출가 김광보도 ‘과학’보다는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 현상을 뒤집어 현상 이면의 또 다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개연성 있는 허구를 다루는 픽션의 매력이고, 그 중심에서 인간의 생생한 욕망과 갈등을 드러내는 것은 김광보의 장기다.

두 시대, 세 쌍의 부부, 다섯 명의 위원회를 수없이 오가며 진행되는 극의 복잡성은 치밀한 구성과 배우들의 정확한 연기로 꼼꼼히 짜여져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단순하게 정리되는 인정(認定) 욕망과 갈등의 구조에 비해 극의 구조가 지나치게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그런 혼란이 바로 인간 욕망의 복잡성을 표현하는 효과적 기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극의 구조와 주제의 구조 사이의 긴장은 언제도 늦출 수 없다. 그럼에도 객관성을 가장한 이 시대의 새로운 종교인 ‘과학’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그 이면의 본질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과학연극’의 새로운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극단 모아모아(MoA)’가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제작 방식이다. 대학로의 대표적 공연기획사 중 하나인 ‘모아(MoA)’가 ‘극단 모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내놓는 이 작품은 한국과학문화재단을 비롯한 과학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고 관객층을 폭넓게 확대하며 연극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려는 시도다. 객석을 확장해 가며 관객들을 받느라 분주한 것을 보면 이들의 시도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20일까지. 화수목 오후 7시반, 금토일 오후 4시반 7시반(월 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1만∼2만원. 02-744-0300

김형찬기자 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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