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유명 가구 브랜드들이 내세운 올 가을 신제품의 화두다. 체리목이 검정에 가까운 카카오색 오크에 자리를 내주었다.
미니멀한 모더니즘을 동양적인 모티브로 풀어내는 실험도 무르익었다.
9∼14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03년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는 67개국의 2160개 업체들이 참가해
모던 스타일 위주의 신제품들을 선보였다.
경기가 나쁠 때는 유행도 더디 오는가.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전년도와 눈에 띄게 다른 디자인은 보이지 않았다.
가구의 색상은 많이 어두워졌다. 체리에 이어 코코넛색(밤색) 월넛이 나오더니 이보다 더 진한 카카오색 가구가 등장했다.
체리의 유행은 한풀 꺾이다 못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카카오색 가구는 오크나 애시 무늬목에 카카오색을 입힌 것으로 거의 검정에 가깝다.
이는 서구 가구업계에 불어닥친 오리엔탈리즘의 유행을 반영한 것. 체리는 동양적인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색이다.
카카오색 오크로 통일하거나 카카오 오크에 화이트 오크를 함께 써서 흑과 백의 대비를 시도하는 등
젠 스타일을 표현한 제품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패브릭에서도 오리엔탈리즘을 읽을 수 있었다. 빨강 금색 진분홍 녹색 쪽색 등 동양적 색감을 모던한 디자인으로
적절히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자인은 디테일로 승부를 걸었다. 모난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가구의 두께를 얇게 혹은 두껍게 하는 등
작은 노력으로 다르게 보이기를 시도했다. 특히 손잡이를 감춘 스타일이 두드러졌다.
서랍장 장식장 등은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모를 정도. 문을 살짝 누르면 열리거나 서랍의 위쪽에 난 홈을 이용해 여는 식이다.
서랍장이나 침대 옆에 두는 협탁도 전면을 볼록하게 처리해 변화를 주었다.
침대도 몸체는 지난해 디자인을 그대로 두고 헤드보드에 포인트를 주었다. 헤드보드를 높게 처리하거나
가죽 또는 천을 씌워 나무 본체와 조화를 꾀한 것. 서로 다른 성질의 소재들을 활용한
이른바 ‘믹스 앤드 매치(Mix & Match)’ 스타일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공간에 가구를 채워넣기 보다는 공간을 비워내는 개념은 젠 스타일의 기본.
공부방에 향을 피워놓거나 한자로 장식한 공간도 눈에 띄었다.
주거 공간이 좁은 국내에서도 짙은 색의 가구가 유행할 수 있을까. 가구의 유행은 아파트 건설회사가 선도한다.
모델하우스에서 특정 가구의 경향을 선보이면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는 2년 후 모델하우스에서 제시한 가구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이스침대 개발팀의 김귀호 차장은 “실내 공간이 좁으면 카카오 오크처럼 짙은 가구를 들여놓기가 부담이 된다”며
“세계적인 흐름에 맞게 국내에서도 카카오 오크가 유행할지는 아직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밀라노 박람회 기발한 디자인 눈길▼
입식 문화에서 의자는 가장 기본적인 가구다.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에 선보인 의자는 가구가 아니라 예술이고 과학이었다.
네 개의 다리 중 뒷다리 2개가 없는 의자도 신기하게 넘어지지 않고 앉을 때 몸을 지탱해 준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직물처럼 타원형으로 짜서 반쯤 비틀어놓은 의자는 조형미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탄성이 있어 어느 지점에 앉아도 편하게 몸을 의지할 수 있다. 인체공학의 승리요 디자인의 축복이다.
의자가 필수 생활용품인 서구의 가구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인체공학과 디자인이 뛰어난 의자를 개발해낸다. 박람회에 참가한 신예 가구 디자이너들도 기발한 소재와 디자인, 기능의 의자를 만들어 데뷔전을 치른다.
소파도 지난 50년간 꾸준히 진화해 왔다. 소파 밑의 스프링은 폐타이어를 이용해 만든 고무 밴드로 대체돼 소파의 수명이 반영구적이 됐다. 자투리 천으로 채워 넣던 소파의 속은 폴리우레탄으로 바뀌었다. 목 엉덩이 허리 등 소파에 닿는 신체 부위에 따라 폴리우레탄의 탄성도도 달라져 최적의 편안한 자세가 나오도록 돕는다.
한국의 가구 문화도 침실에서 거실 가구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가구업체들은 홈시어터 등의 등장으로 안락의자 소파 베드 등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의 의자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밀라노=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