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 최승희에 대한 환상, 기대, 그리고 아쉬움은 그녀의 예술과 행적을 알수록 증폭된다. 이런 면면을 세세하게 다룬 책이 바로 ‘춤꾼 최승희’다. 춤추는 여자는 모두 기생이나 창녀처럼 생각하던 일제강점기에 춤을 진정한 예술로 승격시킨 주인공이 바로 최승희다. 더구나 그녀는 당시 조선인으로 세계적 예술가 반열에 오른 자랑스러운 민족적 자부심이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의 분위기와 언론보도 등을 근거로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인 마라토너 손기정과 최승희의 인기를 동일 선상에 올려놨다.
이 책에서는 이전까지 최승희의 삶을 피상적으로 훑어오던 이전의 저술들과 달리 최승희의 예술적 변화와 그녀의 정치적 변모 과정을 편지, 언론 보도, 간행물,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심지어 개인적 친분관계까지 추적해 근거를 대고 있다. 예컨대 당시 좌파 문인 단체인 카프의 동인이었던 남편 안막(본명 안필승)의 영향으로 어떻게 ‘조선’이라는 민족성이 담긴 무용작품이 등장하게 됐는지, 왜 북으로 갔는지 등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런 점들은 이전의 최승희 관련 저술들이 그녀의 행적을 보이는 그대로 옮겨 기술한 것보다는 일보 진전된 것이다. 물론 이는 저자가 최승희 춤의 모태가 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일 뿐 아니라 총련계 대학인 일본의 조선대를 나와 총련계 및 북한측과의 교류가 개인적으로 매우 용이했기에 가능했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저자는 최승희의 월북 이후 행적을 소상히 밝힐 수 있었다. 그는 김일성과 다른 파벌들간의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려 남편 안막이 숙청된 과정, 김정일의 등장 후 주체사상에 동조하지 못하는 최승희가 결국에는 제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도 개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큰 줄기는 최승희라는 걸출한 무용가가 민족과 이념 분쟁이라는 격동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어떻게 꽃피우고 살아왔는가를 밝힌 처절한 생존 기록이다. 식민 속국의 조선인으로 항상 일본의 감시를 의식해야 했고 또 그랬기에 동포들로부터는 친일분자라는 오해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광복 후에는 자신의 예술을 좀더 이해하고 후원해 줄 사람과 환경을 찾아 헤매는 예술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치 그녀 자신의 예술과 모든 것을 단숨에 집어삼킬 듯한 민족과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최승희가 면면히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위험한 외줄에서 어떻게 떨어져 불행한 최후를 맞는가를 밝혔다.
반면에 저자는 아직도 베일에 싸인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최승희에 대한 환상과 전설이 아직도 생성되고 있으며 자신 역시 그 범주에서 예외가 아님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 역시 평전작가나 역사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가정과 짐작, 그리고 추론으로 그녀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혜 월간 ‘몸’ 편집장 gissell@freechal.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