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세요]이원종 前정무수석

  • 입력 2003년 4월 20일 17시 51분


최근 제작이 끝난 CD롬 ‘식물관찰일기’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는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권주훈 기자
최근 제작이 끝난 CD롬 ‘식물관찰일기’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는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권주훈 기자
“들꽃 하나에서 우주를 배울 수 있습니다.”

17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4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원종(李源宗·64)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제작을 마친 CD롬 ‘식물관찰일기’를 작동해 보이면서 이같이 말했다.

‘백두산의 꽃’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동영상 CD는 백두산 야생화의 4계를 사진작가 김정명(金正明)씨가 현지에서 촬영한 것. 21일 쯤 1500여장을 발간해 전국 초중고교에 무료 배포할 예정이다. 이 전 수석은 CD롬의 제작의 ‘총감독’ 역할을 했다.

“괭이눈이 잎을 노란색으로 물들여 곤충을 유인하고는 가루받이를 끝내면 잎을 다시 초록으로 되돌리는 것을 보면 신기해요.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자연인처럼….”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실세였던 그가 자연과 국토에 대한 사랑에 푹 빠지게 된 것은 1998년 YS의 임기가 끝나자 평소의 꿈대로 들꽃 사진 찍기에 나서면서부터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1만여 컷의 들꽃 사진을 찍으면서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세계화 시대를 살아 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추는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를 위해 2000년 11월 사단법인 ‘우리 누리’를 만들었다. 친구가 얼마간의 기금을 쾌척해 준 것이 밑거름이 됐다.

“세계적인 고려청자 기술도 그렇고, 토종 식물도 외국인이 종자를 채취해 자국에서 키운 뒤 우리에게 역수출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못 지켰기 때문이죠.”

한때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그가 우리 국토와 자연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권력이라는 삭막함을 좇는 것보다 꽃과 생명을 좇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의미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무수석 시절 누가 YS 욕이라도 하면 곧잘 핏대를 세우곤 해선 ‘혈죽(血竹) 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이지만 요즘 정치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지킬 만한 가치가 있어서 지켜온 나라인데 과거의 것은 무조건 잘못됐다는 식이라면 곤란하다”고만 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한양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실 정치의 한 복판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이론과 접목시켜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11월에는 석사 논문을 발전시켜 ‘새로운 중국과 한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YS를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내 자신이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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