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세상의 모든 생물에 관심이 많다. 지렁이마저 손으로 잘 잡고 찬찬히 보다가 놓아주고는 한다. 얼마 전에는 풍뎅이를 잡아서 찬찬히 보고 있는데 방과후 반 형아가 와서 밟아 죽여서 울 뻔했단다. ‘그 형아는 벌레는 모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나봐’라고 자못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왜 이런 아이들이 생겼을까? 어른들이 벌레라면 사정없이 죽이고 약을 쳐대고 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말들은 하면서…. 벌레들은 그 가치로운 생명의 반열에도 못끼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접하게 된 책이 ‘벌레가 좋아’다.
‘벌레가 좋아’는 참 예쁘고 단아한 책이다. 벌레에 관한 그림책이 이렇게 단아하단 말이 좀 생경하다고? 벌레는 징그럽고, 위의 그 아이 생각처럼 ‘모두 죽어야’ 하니까?
그러나 벌레가 징그럽다는 건 벌레를 잘 몰라서 갖게 된 편견일 뿐인지도 모른다.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천적이 죽어 없어지면 벌어지는 생태계의 파괴를 걱정하거나 농약의 위험성을 보면서 유기농산물만 사다 먹을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더불어, 세상의 모든 미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아이들이 저절로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난 벌레가 좋아’란 말이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반복되면서 ‘검정벌레. 초록벌레. 얌체벌레. 심술벌레. 요런 벌레. 조런 벌레.’ 등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간명하면서 유머러스한 글귀와 그림들은 나의 이러한 바람을 보듬어주는 데가 있다.
아기들은 또 다른 아기가 ‘동글이 벌레. 반짝이 벌레. 뚱보 벌레. 귀염둥이 벌레. 덩치 벌레. 멋쟁이 벌레’가 좋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더불어 벌레같은 생물들도 친숙하게 느끼게 되고, 덤으로 말도 배우고 관찰력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글도 글이지만 바탕 그림에 철사니 점토 등으로 벌레를 만들어 붙였다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무척 깜찍하다. 그림이 하도 현대적이고 세련되었기에 당연히 외국에서 저작권을 사와 그대로 찍어낸 책인 줄 알았는데 새로 그려 넣었단다.
작가가 작고한 지 오래 되어서 저작권이 필요없는 텍스트를 가져와 삽화를 새롭게 구성한 아이디어와 정성이 신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상당히 치즈냄새가 나는 것은 한번 더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나라 그림이라 해서 모두 투박한 된장 냄새를 풍길 필요는 없지만, 또 요즘 책을 사주는 도시의 엄마들부터가 피자와 게살 샐러드를 봄나물 비빔밥보다 좋아하는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중요한 것은 역시 아이들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자연을 접해보는 일이다. 아예 자연과 만날 기회가 봉쇄된 살균된 고장의 아이들에겐 이렇게라도 해주는 게 필요하겠지만.
주미사(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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