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디스코 바지-펑크 머리…80년대를 다시 입는다

  • 입력 2003년 4월 24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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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패션을 기억하는가. 헝클어진 머리, 큰 사이즈의 뿔테 안경, 어깨선에 패드를 잔뜩 넣어 불룩하게 강조한 재킷, 허벅지를 조이는 미니스커트, 디스코 바지, 부츠에 바지를 집어넣어 입는 스타일….

20년을 훌쩍 뛰어 넘은 2003년 현재, 80년대가 다시 패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강하게 불기 시작한 레트로(복고) 열풍은 7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80년대풍으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80년대는 커리어 우먼들이 즐겨 입었던 딱딱한 느낌의 정장 ‘파워슈트’와 함께 MTV로 대표되는 팝 문화의 영향으로 알록달록한 색상을 대거 가미한 캐주얼 패션이 부각됐던 시대다.

● 80년대가 돌아왔다

80년대 거리에 돌아왔다. 최근 이탈리아밀라노 거리에서 촬영한 젊은이들의 모습(왼쪽위 큰사진). 2003, 2004년 해외 추동컬렉션에서 선보인 디젤 스타일랩, D&G, 버버리 프로좀, 돌체 앤드 가바나의 80년대 룩. (왼쪽부터)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80년대 패션’은 비대칭 헤어 스타일에 큰 사이즈의 플라스틱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 또는 팔찌를 주렁주렁 달고, 캐주얼 티셔츠 위에 가는 넥타이를 매는 등 기존의 옷 입기 방식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패션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가는 뉴욕의 ‘베를리니암버그(berliniamsburg)’, 런던의 ‘내그내그내그(nagnagnag)’같은 클럽과 우리 나라의 홍익대, 명동 거리에 흐르는 음악 또한 80년대 전자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2001년 세계 클럽가에서는 프랑스 전자 음악 듀오 그룹인 ‘대프트 펑크(daft punk)’의 80년대풍 복고 사운드 앨범 ‘디스커버리(discovery)’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현재까지 이같은 스타일의 음악이 계속 유럽 음악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프트 펑크’ 등의 그룹이 유행시킨 디스코 팝 스타일은 애절한 느낌의 멜로디에 ‘뿅뿅’거리는 디스코 리듬과 신디사이저 사운드, 로봇이 말하는 듯한 기계음이 가미돼 있는 스타일.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선 ‘I love the 80’s’라는 80년대 문화 소개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며 인터넷에 1980년대 음악과 영화를 회고하는 각종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영화 ‘도니 다코’(2001)는 80년대의 우울한 분위기를 차용했고, 한국 영화 ‘품행제로’(2002), ‘남자가 되다’(2002) 역시 80년대를 소재로 활용해 사랑을 받았다.

스타들의 패션에도 80년대풍이 묻어난다.

국내 인기 그룹 ‘god’는 최근 테일러링 슈트와 스포티 캐주얼을 섞어 입고 다이아몬드 링 귀걸이와 목걸이, 휘날리는 파마 머리로 등장했는데 성별 구분, 캐주얼 스타일과 포멀 스타일의 구분이 애매모호함은 80년대 패션의 큰 특징이다.

TV 드라마 ‘천년지애’의 소지섭은 연두, 노랑 등 컬러풀한 색상의 재킷에 청바지 차림, 펑크 머리 등으로 완벽한 80년대식 스트리트 패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80년대 문화의 영향은 최근에 열린 2003, 2004년 추동 컬렉션에도 보였다. 지난 몇년간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의 슈트를 내놓던 돌체 앤드 가바나는 80년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인 꼼므 데 가르송, 요지 야마모토 등이 주도했던 아방가르드에서 영감을 얻은 듯 어깨를 부풀려 과장된 실루엣의 슈트를 내놓았다. 캐주얼 브랜드 디젤은 강렬한 색 매치와 겹쳐 입기, 플라스틱 액세서리로 80년대 MTV에서 튀어나온 듯한 옷들을 선보였다.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에서는 키치적인 캐주얼 레이어링 감각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패션뿐만 아니라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서 보이는 80년대풍은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 왜 80년대인가

8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세상을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우파 대 좌파, 이반(동성애자) 대 일반 등 이분법으로 나누어 쟀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또한 출세 지향적인 여피족과 반체제주의자, 현실안주적인 중산층, 노동자 계급 등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나뉘어지면서 ‘차이’에 대한 갈등이 심화됐다. 반면 눈부신 과학 기술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미래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도 확산됐다.

기성세대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로 1980년대의 젊은이들은 기존의 패션 규칙을 깨기 시작했다. 펑크풍의 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비대칭 겹쳐입기와 치마 위에 속치마를 입는 패션으로 화제가 되었다. 일렉트로닉 팝의 대표적 밴드였던 ‘유리드믹스’의 여성 싱어 애니 레녹스는 남자처럼, 팝 그룹 ‘컬처클럽’의 남성 싱어 보이 조지는 여자처럼 입는 파격적인 패션을 보여주었다. 80년대의 대표적 팝 스타 마돈나와 프린스는 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차림새로 사회적 금기에 도전했다. 이런 풍조는 다양한 대중 문화의 형태로 빠르게 보급되었고 포멀과 캐주얼, 남성성과 여성성을 무시하고 여러 가지를 한데 섞어서 입는 패션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나라 안팎으로 전쟁 등 각종 이슈에 대해 보수 대 진보 등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2003년의 상황은 80년대의 사회 분위기와 비슷하며 패션에서도 공통분모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현 시점에서 80년대가 트렌드가 되고 있는 이유가 어떤 것이든, 특히 젊은이들은 이 트렌드를 환영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막 지나온 90년대의 패션은 ‘단순하고 달콤했기’ 때문에, 이 80년대의 역동적이고 힘 있는 스트리트 문화에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송서윤 퍼스트뷰코리아 패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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