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 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4월 24일 18시 23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猛虎出林(3)

"삼왕묘의 전설은 또 무엇입니까?”

이야기에 취해 듣고 있던 항우가 불쑥 물었다. 타고난 무골(武骨)인 항우도 남방 초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불같은 격정만큼이나 풍부한 감성이 바로 그랬다. 계포가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갔다.

“막야의 아들은 초왕(楚王)이 천금(千金)을 걸고 자기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산 속으로 달아나 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며 자신의 무력함을 통곡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협객(俠客) 하나가 듣고, ‘그대는 그리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어찌하여 노래와 울음소리가 그토록 슬픈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막야의 아들은 솔직하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고, 또 아비를 죽인 초왕에게 원수갚을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 협객은 한동안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더니 가만히 말하기를 ‘내 들으니 왕이 천금을 걸어 그대의 머리를 얻고자 한다 하였소. 이는 왕이 이미 그대를 안다는 뜻이니, 그대의 손으로 원수를 갚기는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만약 그대가 그대의 목과 그 보검 간장(干將)을 내게 준다면 내가 그대를 위해 원수를 갚아주겠소.’ 라고 했습니다.

막야의 아들은 협객의 그같은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한번 다짐조차 받는 법이 없이 간장검을 빼어 자신의 목을 자른 뒤 두 손으로 그 머리와 칼을 협객에게 바쳤습니다. 그 협객도 그런 믿음을 짐스러워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목이 없는 막야의 아들은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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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은 그 길로 막야의 아들 머리와 보검을 들고 초왕을 찾아갔습니다. 초왕이 그 머리를 받아 보니 과연 이마가 한 자나 되는 게 꿈에 본 그 얼굴이라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때 그 협객이 초왕에게 말하기를, ‘이는 용사의 머리라 마땅히 가마솥에 삶아 그 넋과 얼을 흩어야 합니다.’ 라고 하니 초왕은 그 말대로 막야의 아들 머리를 가마솥에 넣고 삶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사흘 낮 사흘 밤을 삶아도 그 머리는 물크러질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이따금씩 끓는 물위로 머리가 솟아올라 눈을 부릅뜨고 왕을 노려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협객이 다시 초왕에게 ‘저 아이놈의 한이 깊어서인지 사흘을 끓여도 머리가 익어 문드러지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몸소 가마솥 가에 가시어 굽어보신다면 틀림없이 대왕의 위엄에 눌려 저 머리가 물크러질 것입니다.’ 라고 부추겼습니다.

초왕은 이번에도 그 협객의 말을 믿고 가마솥 곁으로 가서 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그 협객이 왕이 차고 있던 간장(干將)을 빼어 왕의 목을 치니 그 머리가 끓는 가마솥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협객은 다시 그 보검으로 제 목을 쳤습니다. 그러자 협객의 머리도 가마솥 안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세 머리가 나란히 가마솥 안으로 떨어지자 비로소 머리들이 익어 문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놀란 신하들이 불을 끄고 장대로 가마솥을 휘저어 머리들을 건져냈을 때는 세 머리가 모두 물크러져 어느 것이 누구의 머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세 머리를 모두 왕의 예로 장사지냈는데, 그게 바로 삼왕묘(三王墓)라고 하며, 듣기로는 지금 여남(汝南) 북쪽 의춘현(宜春縣) 어디에 있다고 합니다. 또 보검 간장은 그때 초나라 왕실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부고(府庫) 깊이 처박아 두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맞는 말인 듯 합니다.”

“이게 바로 그 간장검이란 말이오?”

항우가 새삼스럽게 그 보검을 뽑아보며 감탄했다. 그러다가 검을 거두어 용저(龍且)에게 맡기며 계포를 보고 물었다.

“그런데 - 선생께서 무슨 일로 누추한 이곳까지 몸소 오셨습니까?

“회계수(會稽守·항량)께서 급히 장군을 찾으십니다. 아무래도 이제 우리가 움직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계포가 비로소 항량의 부름을 전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어딘가 들뜬 기색이 있었다. 처음에는 보검 때문인가 싶었으나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가 움직일 때라니요? 성안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진왕(陳王)께서 사람을 보내 왔습니다. 드디어 진왕께서도 강동에 우리가 있는걸 아신 것 같습니다.”

“진왕이라면 진(秦)나라 장수 장함에게 크게 지고 쫓겨가지 않았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하던데, 사람을 보내다니요?”

항우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회계군을 손에 넣고도 네댓 달이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진왕과의 연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근래에 들리는 소문에는 진왕이 이미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도 계포의 목소리는 밝기만 했다.

“떠도는 말과는 달리 아직 굳건하게 버티고 계신 모양입니다. 진군(秦軍)을 다시 내몰고 광릉(廣陵)을 치려하신다고 합니다.”

“진왕이 광릉을 치려한다고?”

“예. 오늘 온 사람이 바로 진왕에게서 광릉을 치란 명을 받고 군사를 얻어 나온 소평(召平)이란 장수라고 합니다. 전해야할 진왕의 어명이 있다며 회계수 어른께 관원들을 모두 불러모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항우도 성안으로 들 채비를 했다. 따지고 보면 그도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은통을 죽이고 회계군을 손에 넣기는 했으나 그들 숙질(叔姪)이 이끄는 무리는 아직 강동에 고립된 지역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반진(反秦) 봉기의 맹주(盟主)로 널리 우러름을 받는 진왕이 사람을 보내온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계포와 함께 군막을 나온 항우는 곧 오중 성안으로 달려갔다. 현청(縣廳)에는 이미 높고 낮은 관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항량도 드물게 군수의 관복까지 갖춰 입고 현청 마루에 나와 있다가 항우가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들이며 말했다.

“진왕께서 사자를 보내셨다. 너도 부장(副將)으로서 나와 함께 왕명을 받들자.”

그때 다시 현청 한쪽이 수런거리더니 한 중년 사내가 서너 명 졸개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리 위엄 있어 보이지 않는 행색이나 뭔가 불안해하는 졸개들의 표정에 비해 그 태도에는 짐짓 거들먹거리는 듯한 데가 있었다. 현청 마루에 들어설 때부터 관원들의 늑장이 못마땅한 표정이던 그는 곧 이제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스스로 현청 마루 가운데 높은 곳으로 올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장초(張楚) 진섭(陳涉·진승)대왕의 명을 받들어 광릉을 치고 있던 소평이오. 시절이 비상하여 칙서도 인수도 가져오지 못했으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곧 대왕의 엄명이니 어김이 있어서는 아니 되오. 내 말을 알아들으시겠소?”

“삼가 천명을 받들겠습니다.”

항량을 비롯한 회계군의 높고 낮은 관원들이 목소리를 합쳐 그렇게 대답하자 소평이 한층 엄숙하게 이었다.

“대왕께서는 당초 진장(秦將) 장함에게 다소간 어려움을 겪었으나, 마침내 흉측한 도적을 물리치시어 강동(江東)은 이미 평정되었소. 이제 회계 군수 항량을 장초의 상주국(上柱國· 楚나라의 上卿으로 相國과 같음)에 봉하니, 상주국은 군사를 이끌고 강서(江西)로 가서 진나라의 남은 세력을 쓸어버리도록 하시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이 소평이란 인물의 엉뚱한 행각이다. 소평은 광릉 사람으로 그가 진왕의 명을 받들어 광릉을 치려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그가 광릉을 떨어뜨리기도 전에 진왕은 장함에게 져서 근거지를 잃고 쫓기다가 죽고 없었다. 게다가 광릉이 진(陳)땅에서 머지 않으니 진왕의 죽음은 오래잖아 그에게도 알려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석 달이나 지난 뒤에 군사도 없이 홀연 회계군에 나타나 살아있지도 않은 진왕의 거짓 명을 항량에게 전하고 있다.

“......소평은 진왕 진섭을 위해 광릉을 치러갔다가, 성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진왕이 이미 싸움에 져서 쫓겨가고 또 진나라 군사들이 장차 자기를 치러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진왕의 명을 거짓으로 내세우고[교진왕령] 항량을 찾아가.....”

<사기(史記)>는 소평이 항량을 찾아오게 된 경위를 그렇게 적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진왕의 죽음으로부터 그때까지 그가 어정거린 난세(亂世)의 불같은 석 달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소평은 어쩌다 진승을 따라나서 장수가 된 농군 출신의 허풍선이나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진왕이 져서 쫓겨갔다는 소문에 겁이 나서 우왕좌왕하다가 졸개들을 모두 잃고 헤매던 끝에 항량의 세력이 만만찮다는 말을 듣고 오중으로 찾아와 허풍을 떤 듯하다. 하지만 그 허풍은 오래 웅크린 채 자신을 길러오던 호랑이를 숲 밖으로 내몰아 천하가 뒤집히는 바람과 비구름을 몰고 오게 된다.

뭔가 석연찮은 데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소평이 전한 진왕의 명은 오중 성안의 기세를 드높였다. 특히 항량은 억지로 빼앗아 차지한 회계군수에서 초나라의 상경(上卿)인 상주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강서로 세력을 뻗쳐나갈 구실을 얻게되니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은 느낌이었다. 곧 항우와 8천 강동병을 앞세워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현군(縣軍)으로 남아 회계 땅을 지킬 이들을 빼고도 2만이 넘는 군세(軍勢)였다.

참고 기다린 지난 다섯 달도 헛되지 않았다. 그 동안 항우가 기른 강동병들은 조련이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장졸(將卒) 사이의 일체감이 강하고 사기도 드높았다. 회계군 백만 인구와 스물 여섯 개 현(縣)에서 거두어 들여놓은 곡식과 군비도 제몫을 했다. 강을 건너 중원(中原)의 사슴을 쫓으려 가는 항량의 군사를 그 무렵 각지에서 일어난 어떤 군사들보다 더 넉넉하고 채비가 갖춰진 군사로 만들어주었다.

“삼월 열 이튿날에 장강(長江)을 건너 서쪽으로 간다. 우이(우이) 동남쪽의 동양(東陽)현이 첫 싸움터가 될 것이다!”

일자(日者)에게 물어 날을 받고 방향을 정한 항량은 그렇게 명을 내려 떠날 채비를 하게 했다. 그러자 오중 성안은 큰 잔치판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흥청거리고, 군사들도 목숨을 건 싸움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큰 잔치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처럼 떠날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떠나는 이들과 남는 이들이 나누는 작별의 의식까지 마냥 즐거움과 기쁨만일 수는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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