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03…명멸(明滅) (9)

  • 입력 2003년 4월 2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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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역에는 인력거가 한 대도 서 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아내의 친정인 쌀가게 앞을 지나 강가로 내려가 은어 낚싯배에 올랐다 아버지의 유골을 강에 뿌렸을 때와는 다른 사공 같았다 배는 얼음이 언 12월의 밀양강을 흘러갔다 용두산이 천천히 다가오고 종남산은 천천히 멀어져갔다 사공은 오징어를 씹듯이 입을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버들은 버들 나비는 나비 뜬세상은 꿈속의 덧없는 사랑 내게 정이 있단들 길 떠나는 그대를 어찌하리 가락이 뒤죽박죽인 노래를 흘려듣다 보니 눈이 무거워졌다 눈을 감자 여자가 있었다 아내도 아니고 두 첩도 아니고 안은 적도 눈을 마주친 적도 말을 건 적도 스치고 지난 적도 없는 여자였다 여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 여자나 나나 눈을 깜박일 수조차 없었다 버들은 버들 나비는 나비 뜬세상은 꿈속의 덧없는 사랑 내게 정이 있단들 길 떠나는 그대를 어찌하리

문을 들어서자 남동생이 달려나왔다 신태가 큰일났다 열이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의사 선생님한테서 약 받아가 먹였는데도 열이 하나도 안 내린다 나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툇마루에 내던지고 두루마기도 벗지 않은 채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열에 들뜬 축축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껍질이 일어나 허여끄레한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아버지 굉장하다 아사히 신문에 이름 난 거 삼촌한테 오려달라고 했다 구간 우승 여섯 번이라고 했재 정말로 대단하다 몇 번이나 달렸나?

일곱 번이다

전부 합하면 몇 리나 되는데?

아마 사백오십 리쯤 될 끼다 빠른 선수는 몇 구간이든 달려야 한다 신태야 괜찮나?

일본 선수도 몇이나 제쳤재

그래 제2구간에서 다섯 명이다

나 아버지 따라 미야자키에 가서 응원하고 싶었다 예의 구니모토 군의 초인적인 활약으로 관동을 따돌렸다> 초인적이라 카면 사람 아닌 것처럼 빠르다는 기재 삼촌이 가르쳐줬다 하기사 맞는 말이재 아버지는 나를 목말 태우고도 새처럼 달리니까네 발이 땅에 안 닿는 것 같다 아이가 병 다 나으면 냉면 가게 정학이한테 신문 기사 오린 거 보여줄끼다 <예의 구니모토 군의 초인적인 활약으로 관동을 따돌렸다

① <덧없는 사랑> 사이조 하토 작사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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