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단 황제즉위식 잊혀져 ▼
이 기사는 고종이 원구단에 가서 하늘에 제사하고 황금 의자에 앉아 황제에 즉위하던 날 서울 장안의 경축 분위기를 전하는 내용이다. 명성황후의 참변이 일어난 을미사변 이후 일본에 대한 복수와 진정한 자주독립을 절규하는 국민 여론이 드디어 대한제국을 탄생시켰으니, 차가운 가을비에도 불구하고 길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밤에는 색등불을 걸어 황제국의 탄생을 경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한제국은 비록 14년의 짧은 역사를 남긴 채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주독립한 민국(民國),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일구어 근대국가를 건설하던 중요한 시기였고, 그 주역인 고종은 을사조약을 반대하다가 퇴위를 강요당하고, 망국 이후에도 국권회복의 꿈을 버리지 않다가 1919년 1월 21일 독이 든 식혜를 들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3·1운동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고종의 독살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대한제국의 멸망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다. 패장은 할 말이 없다고 하지만, 패장에게 뒤집어씌운 온갖 중상은 벗기는 것이 마땅하고, 패장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감싸 안는 것이 오늘의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일제강점기 왕조의 유산이 무참하게 파괴된 것이 어찌 한둘인가. 그런데 대한제국이 자주독립을 위해 몸부림쳤던 유적처럼 철저하게 파괴된 것도 없다. 제국의 법궁이던 경운궁이 그렇고, 을미사변 때 일본군과 항쟁하다가 산화한 영혼들을 위해 지은 장충단이 그렇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가 즉위식을 거행한 원구단의 처참한 모습이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3층 담장을 쌓고, 그 위에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황금색 지붕을 세워 놓았으며, 그 옆에 하늘과 땅의 여러 신위들을 모신 3층 팔각지붕의 황궁우를 건설했다. 그런데 자주독립의 상징인 원구단을 일본이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1914년 총독부는 황궁우만 남기고 제단인 원구단을 헐어 그 자리에 철도조선호텔을 지었다. 이때부터 황궁우는 조선호텔 후원의 장식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광복 후 조선호텔은 더욱 우람한 건물로 개축됐다. 그 주변에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서 황궁우가 어디에 있는지, 원구단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호텔을 찾는 인사들은 호텔에서 세운 옛날 정자쯤으로 알 것이다.
▼日 역사왜곡 규탄할 자격 있나 ▼
중국 베이징에는 천자(天子)들의 제천소인 어마어마한 규모의 천단(天壇)이 있다. 만약 침략자가 이것을 헐고 호텔을 지었다면 우리처럼 가만히 두었을까.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안타깝다. 이것이 우리 교육 문화정책의 현주소이고 역사의식이라면 어떻게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할 수 있단 말인가.
일제에 의해 파괴된 문화유산의 복원이 민족정기 회복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복원공사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유적들에 대한 관심은 왜 그토록 무심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일제가 죽인 대한제국을 우리 손으로 다시 죽이는 것이 올바른 역사의식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영우 서울대 교수·한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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