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신문시장개입 근거 마련…정부규제 사실상 부활

  • 입력 2003년 4월 30일 22시 59분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위원회가 30일 내놓은 신문고시(告示) 수정안은 정부가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불씨를 남겼다. 규개위는 신문협회의 자율 규제를 규정한 신문고시 11조의 일부 문구를 삭제해 정부 간섭의 근거를 마련했다.

비록 자율 규제를 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달았으나 그 내용이 모호해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율규제 조항 삭제=현행 신문고시 11조는 ‘공정경쟁규약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사업자단체(신문협회)가 우선적으로 동(同) 규약을 적용해 사건을 처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개위 수정안은 공정위 주장대로 ‘우선적으로’란 표현을 삭제해 자율규제 전에라도 정부가 간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언론의 자율을 존중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3가지 단서조항도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자율권을 보장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수정안은 공정경쟁규약을 두 번 이상 위반했을 때부터 정부가 제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를 ‘지국 단위’로 해석한다면 손쉽게 개입할 수 있다. 신문마다 수백개 지국이 독립적으로 영업을 하는 상황에서 일부 지국이 비슷한 위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 국한된 위반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없도록 했으나 ‘일부 지역’의 범위도 모호하다. 이 같은 모호한 규정은 실제 시행 과정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규개위는 단서규정에 대해 공정위와 협회가 협의해 투명한 지침을 만들도록 권고했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우월적 지위를 가진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단서를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수정안은 2일 전원회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전망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정부 개입 가능성 높아져=99년 폐지된 신문고시는 2001년 자율규제를 전제로 부활됐다.

정부는 이번 개정을 앞두고 신문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우선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신문업계의 메이저 3사가 시장점유율이 75%에 이르는 시장지배적(독점적) 사업자라고 주장했다.

또 시장점유율이 낮은 일부 신문들이 선호하고 있는 신문공동배달제에 문화산업진흥기금이라는 재정지원 의사를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문협회 등은 신문고시 개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로 경품관련 위반건수가 작년 월평균 44건에서 올 들어 1월 9건, 2월 7건 등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자율규제가 효과가 없어 정부가 개입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적다.

신문시장에 대한 정부 직접개입의 길을 보다 넓히는 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의적이고 편파적 집행 가능성이다.

실제로 2001년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및 공정위 부당내부거래조사 과정에서 당시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정권의 잘못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몇몇 주요 신문을 표적으로 삼은 바 있다.

한편 공정위도 당초 원안(原案)에 단서조항을 붙인 규개위 수정안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병주(李炳周) 공정위 경쟁국장은 “단서 조항이 모호해 공정위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다”며 “사업자 단체의 자율 규제를 일부 허용한 단서조항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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