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꽃과 이야기하는 여자'…꽃향기, 생존 위한 몸부림

  • 입력 2003년 5월 2일 17시 31분


화가 천경자가 여성을 형상화해 그린 1974년 2월 여성동아 표지. 동아일보 자료사진
화가 천경자가 여성을 형상화해 그린 1974년 2월 여성동아 표지. 동아일보 자료사진
◇꽃과 이야기하는 여자/차윤정 지음/199쪽 9500원 중앙M&B

‘여자는 꽃과 같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면 당장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주인공에게 한방 얻어맞을지 모른다. 연약하고 수동적인 이미지, ‘사무실의 꽃’이란 말처럼 분위기 메이커나 남자세계에 딸린 부속품처럼 여자를 봐서는 안 된다는 반격을 감수해야 할지도….

그러나 저자는 ‘꽃이야말로 여자와 같고 여자는 세상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꽃은 1억년 동안 자연의 도전에 맞서며 푸른 잎에서 진화를 거듭한 능동적인 존재이며, 꽃의 아름다움은 사치나 낭비가 아닌 생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식물의 80%가 꽃을 피우는 것은 꽃이 가진 우월성과 진보성을 의미한다.

꽃의 신비는 그들의 생식과정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꽃은 근친결혼을 거부한다. 같은 꽃의 암술과 수술이 서로 교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발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개나리는 암술이 길고 수술이 짧은 꽃과 수술이 길고 암술이 짧은 꽃을 각각 피워내 동일한 꽃의 수분(受粉)을 최소화한다. 암술에는 자기 꽃가루를 인식하는 단백질이 있어 자신의 꽃가루가 수분됐을 경우 씨방으로 가는 꽃가루관 형성을 억제한다.

꽃의 아름다움은 중매쟁이인 곤충이나 새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지만 꽃이 결코 그들의 처분만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을 자극하고 수분의 확률을 보다 더 높이기 위해 각종 장치를 마련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동백꽃이 핏빛에 가까운 붉은 꽃을 피우는 것은 바닷가의 강렬한 푸른빛에 대조시켜 동박새를 유인하려는 것이다. 많은 종류의 난초꽃은 벌 메뚜기 파리 모양을 흉내 내 곤충을 유인한다.

꽃의 향기도 생존을 위한 훌륭한 장치다. 삶이 치열한 환경 속에 놓일수록 향기는 강해진다. 이른 봄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진달래는 향기가 덜한 반면 사촌격인 철쭉은 늦은 봄 다른 종류의 꽃과 함께 피는 탓에 진한 향기를 뿜는다. 바닷가 갈매기 집단서식지에서 피는 죽은말아룸은 갈매기와 물고기의 시체, 배설물 등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몰려든 파리 떼를 유혹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무엇보다 꽃의 아름다움은 생존 곧 가장 최적화된 후손의 생산을 극대화하려는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인 장미는 비운의 꽃이다. 그의 아름다움 때문에 인간은 수많은 개량종을 만들어냈고 아름다움을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 꽃잎을 봉긋이 오므리도록 했다. 거기에 암술을 없애고 수술만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결국 씨앗을 품기 위한 것인데 장미는 이제 인간의 장식품으로 외양만 화려해졌을 뿐이다. 저자는 장미를 통해 내면적 성찰을 상실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

풍부한 꽃 지식을 바탕으로 꽃과 여자의 동질성을 그려낸 저자의 필치를 눈여겨볼 만하다.

덤으로, 저자가 여자 연예인의 이미지를 꽃과 비교한 것을 독자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볼 만하다. 장미희는 홀로 피는 난초꽃, 최진실은 한없이 자유로운 들꽃, 이소라는 보라색 붓꽃, 김혜자는 오래 시들지 않는 장미, 심혜진은 목련, 엄정화는 검붉은 튤립, 김혜수는 농익은 백합….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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