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마르크스의 복수:자본주의의 부활과…'

  • 입력 2003년 5월 2일 17시 49분


◇마르크스의 복수:자본주의의 부활과 국가사회주의의 죽음/메그나드 데사이 지음 김종원 옮김/606쪽 1만8500원 아침이슬

20세기 좌파의 역사는 카를 마르크스와의 대화이자 마르크스적 실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생태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민주주의에서 동구 및 제3세계의 국가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좌파적 사유와 실천의 중핵에는 언제나 마르크스가 살아 있었다.

이 마르크스주의에 오랜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역사적 유물론의 교의, 즉 자본주의 붕괴론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결국 사회주의로 대체될 것이라는 테제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숱한 좌파 사회과학자들이 마르크스를 좇아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해 왔고, 많은 좌파 실천가들은 ‘자본주의 안의 사회주의’(개혁) 또는 ‘자본주의 밖의 사회주의’(혁명)를 모색해 왔다.

이 역사적 유물론은 그렇다면 과연 마르크스가 원래 주장한 것일까. 이 문제는 마르크스가 남긴 저작들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마르크시안’, 즉 역사적 유물론의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인 ‘마르크시스트’와 대비되는 마르크스학자들의 오랜 연구 주제였다. 데사이의 저작은 이런 마르크시안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론을 재조명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왜곡된 마르크스 사상을 복원하고 이에 기반해 지난 자본주의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마르크스가 사회에 대한 예언적 점성술사가 아니라 과학적 천문학자였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연구하고 자본주의를 대체할 공산주의 세력을 탐색했지만, 그것이 사회주의 정부에 의해 자본주의 정부가 대체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마르크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 애덤 스미스와 G W F 헤겔로부터 시작해서 최근 세계화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지적 역사적 여행을 시도했다.

이 여정의 끝에서 저자가 도달한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 사상은 별개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시장을 통제하거나 거부해 온 반면에 마르크스는 오히려 시장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둘째, 마르크스 사상이 이렇게 독해된다면 오늘날 전 지구화된 자본주의야말로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현 단계의 세계화는 세 가지 새로운 경향, 즉 탈규제된 자본 이동,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및 운송 기술의 발전, 사회민주주의와 국가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중심 이동이 결합한 것이다. 1914년 이전의 역사로 돌아가는 이런 경향은 일찍이 마르크스가 대면하고 분석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며,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사상의 ‘현재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세계화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내리는 이론적 실천적 ‘복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두 가지 결론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마르크스 사상과 마르크스주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적어도 마르크스학(學) 안에서는 그렇게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이는 교조적 스탈린주의에 대항했던 서구의 많은 마르크시안들이 제시해 온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남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은 이런 연구들의 출발점이었다.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마르크스 사상을 학문적으로 되살려 내려는 데 있다. 마르크스 저작과 지난 150년의 역사를 종횡무진 추적해 도달한 이런 결론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이런 결론은 그동안 마르크스를 좇았던 좌파 이론 및 정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국가사회주의는 실패했다 해도 과연 사회민주주의마저도 역사적 유효성을 소진한 프로젝트인가.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낳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시장의 원리에 그대로 맡길 수 있는 것인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이론적 흥미와 함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실천적 고뇌를 안겨주는 책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mail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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