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무너진 '큰바위 얼굴'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21분


무너져 내리기 전의 ‘산의 노인’.
무너져 내리기 전의 ‘산의 노인’.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직후. 소년 어니스트는 오막살이집 문 앞에서 어머니로부터 마을 앞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는 사람 형상의 ‘큰바위 얼굴’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언젠가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으나 아직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어니스트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큰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순종과 사랑으로 큰바위 얼굴을 닮기 위해 애쓴다. 가난한 그에게는 큰바위 얼굴이 유일한 스승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니스트는 큰바위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엄청난 부자, 전장에서 많은 공을 세운 장군,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 그리고 천재 시인….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가 기다리던 큰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인 노년의 어니스트가 해질 무렵 야외에서 오래전부터 해오던 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던 모습을 본 천재 시인은 소리 높여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큰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19세기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피천득 역)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글이다.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호손은 ‘주홍글씨’를 비롯해 교훈적인 글을 많이 남겼다. 많은 청소년이 이 글을 읽으며 자기 나름의 큰바위 얼굴을 그려 보았고 또 그를 닮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이 글의 무대인 미국 뉴햄프셔주 프랑코니아 주립공원 내 자연 암석인 ‘산의 노인(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 3일 폭풍우로 소실됐다고 외신은 전한다. 내 맘 속의 큰바위 얼굴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비바람으로 인한 풍화와 오랜 침식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크레이그 벤슨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큰바위 얼굴 복원과 이를 위한 기부금 모금 계획을 밝혔다고 하지만 옛 모습을 다시 찾게 될는지는 미지수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당시 내가 그리던 큰바위 얼굴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지금 내 얼굴은 과연 그 100분의 1이라도 닮았는지 곰곰 생각해 본다.

정작 더 아쉬운 것은 우리가 그려 볼 큰바위 얼굴이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오명철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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