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조통면옥'…"낭만적 통일은 없다"

  • 입력 2003년 5월 6일 17시 40분


연극 ‘조통면옥’은 통일의 문제에 희극적으로 접근하면서 통일이 우리 삶의 구체적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사진제공 공연기획 이다
연극 ‘조통면옥’은 통일의 문제에 희극적으로 접근하면서 통일이 우리 삶의 구체적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사진제공 공연기획 이다

첫 등장인물은 ‘쥐’다. 웬 쥐가 이리도 많을까? 사람들이 나타나면 없어졌다가 사람들이 사라지면 또 다시 나타난다.

휴전선 입구에 있는 음식점 ‘조통면옥’에는 여기 저기 쥐구멍 같은 구멍이 많다. 그 구멍들은 쥐들만 드나드는 것이 아니다. 바닥에, 벽에, 문 아래쪽에, 드럼통 밑에…. 비밀 통로로 이어지고 내실로 통하는 구멍들뿐 아니라 송수화용으로 쓰는 파이프에도 구멍이 있다. 이 구멍들을 통해 사람과 쥐가 드나들고, 쥐가 듣는 사람들의 ‘은밀한 말’도 드나든다.

‘조통면옥’에는 통일을 기다리다 못해 어떻게든 남으로 북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들을 몰래 남북으로 넘나들게 하며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고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설레는 듯하지만, 정말 통일이 된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이러다 정말 통일이 되는 게 아닐까?”

조통면옥의 주인, 북에서 온 안내인, 비밀임무를 띄고 나온 기관원, 모 기업에서 온 재벌 2세. 이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통일의 조짐을 바라보며 초조해 한다. 참, 이들과는 생각이 다른 사람도 하나 있다. 조통면옥에서 심부름을 하며 오직 통일을 염원하는 진달래 같은 아가씨 ‘옥화’.

이들에게 통일은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삶과 직결된 일이다. 통일의 조짐을 바라보며, 조통면옥 주인과 안내인은 먹고살 길을 걱정하고, 기관원은 체제 안정을 염려하고, 재벌2세는 경쟁사를 따돌릴 궁리를 한다. 코믹하게 전개되는 극의 흐름 속에서 통일을 둘러싼 ‘엄숙주의(rigorism)’는 사라지고 통일은 일상적 삶의 문제가 된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 문제를 놓고 너무 얄팍한 발상을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상 통일을 저 멀리 장벽 너머에 두고 우리의 삶으로부터 격리시켜 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엄숙주의’였다. 배우들은 우스꽝스런 연기로 이런 ‘엄숙주의’를 걷어내고,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하며 우리의 삶 속으로 통일이라는 ‘현실’을 끌어들인다.

1999년 ‘통일익스프레스’란 제목으로 초연됐던 작품이지만 아직도 극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특히 오직 통일만을 염원하는 옥화가 남북의 경계병들에게 몸을 허락하면서 휴전선의 지뢰를 파낸다는 이야기는 통일에 대한 환상과 ‘엄숙주의’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구시대적 발상이다.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통일을 이루고자 한다는 옥화의 낭만적 메시지는 가벼우면서도 냉정하게 ‘현실주의’로 접근하는 극의 흐름을 끊어놓는다. 어쩌면 이것은 아직도 ‘낭만’과 ‘엄숙’이 가로막고 있는 통일논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6월29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공휴일 오후 4시반 7시반, 일 4시반(월 쉼). 1만2000∼2만원(팬서비스 기간인 9일까지 1만2000원). 02-762-0010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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