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가 창의성 발달 막는다?…NYT 인터넷판, '억제론' 소개

  • 입력 2003년 5월 6일 18시 11분


한자(漢字)가 창의성을 저해한다?미국 언어학자 윌리엄 해너스가 최근 펴낸 저서 ‘불행의 조짐:아시아의 문자는 어떻게 창의성을 억제하는가(The Writing on the Wall:How Asian Orthography Curbs Creativity)’를 둘러싼 논란이 3일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에 소개됐다.

해너스씨는 이 책에서 “동북아시아가 서양에 비해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혁신적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한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자는 한 글자에 일정한 소리와 의미가 묶여있어 그 자체로 추상적인 알파벳 글자에 비해 추상적·분석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불리하다”는 것.

해너스씨는 서양에서 개발된 기술을 모방해 발전시키는 아시아의 과학 연구 풍토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동양인 이민자는 어려서부터 알파벳에 익숙해져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은 주로 ‘언어에 의해 사고방식이 결정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대한 반론과 통한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이 가설은 1994년 매사추세츠 공과대의 스티븐 핑커 교수가 비판한 후 힘을 잃었다. 핑커 교수는 이번 해너스의 저서에 대해서도 방법론상의 허점을 들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오하이오 주립대의 마셜 엉거 교수는 “동서양간 차이는 문자가 아닌 다른 문화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한자와 창의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한자는 중국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의 저자인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김근(金槿) 교수는 “한자는 개념의 시각 이미지가 너무 강해 다른 생각을 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조순(趙淳) 회장은 “고대와 중세에는 동양의 과학 수준이 서양보다 높았다”고 지적하고 “한자는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고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데 크게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갑골문 이야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인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김경일(金經一) 교수는 “현대의 석화(石化)된 한자는 창의성을 어느 정도 저해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중국 학교에서는 상형문자의 특성이 살아있는 고대 갑골문부터 시작해 글자의 변천 과정을 가르치고 있어 오히려 문화적 역사적 상상력을 기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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