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의 손끝에서 빚어진 화려한 무대와 군중 장면, 투란도트 역 조반나 카솔라, 칼라프 역 니콜라 마르티누치 등의 주역가수와 합창 무용단 등 600여명의 출연자가 빚어내는 웅장한 화음에 2만여명의 관객은 환호와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장에 입장한 관객을 가장 먼저 놀라게 한 것은 시야를 압도하는 높이 45m의 대형 무대세트. 경기장 동편 스탠드를 완전히 채운 세트에는 중국 쯔진청(紫禁城)의 태화전(太和殿)과 슬라이드식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소형 전각 4동이 층층이 겹쳐진 스카이라인을 이뤄 마치 쯔진청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날 무대는 시작부터 좌우로 널찍하게 펼쳐진 회랑(回廊)에 은은한 빛의 파랑 빨강 조명이 교차되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998년 베이징 공연에서는 맛볼 수 없던 시각의 마술이었다. 1막 페르시아 왕자의 처형 장면에서는 베이징 공연과 마찬가지로 참수형 집행자 푸틴파오를 상징하는 중국 전통무술 명인이 등장, 화려한 권법을 뽐내며 관객의 시선을 붙들었다.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 공주에 대한 구혼과 도전의 의미로 징을 세 차례 칠 때 무대 전체가 핏빛으로 변하자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 관객은 “DVD로 감상한 베이징 공연보다 조명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2막 2장, 칼라프 왕자의 수수께끼 풀이 장면에 앞서 색색의 의상을 입고 펼쳐진 눈부신 군무도 객석을 압도한 볼거리였다. 베이징 공연과 비교해 가장 독특한 점 중 하나는 3막 시녀 류의 죽음 장면. 장 감독은 류의 시신 위에 베이징 시민들이 묵언(默言)의 표시로 들고 있던 흰 부채를 덮게 하고, 대형 부채를 공중으로 끌어올려 류의 ‘승천’을 암시했다.
3막 마지막 부분, 왕자의 열렬한 사랑에 마음을 돌린 투란도트 공주가 자기 안의 ‘여성’을 발견하고 이를 천자와 군중 앞에서 밝히는 장면에 이르러 조명과 무용의 화려함은 정점에 달했다. 조명이 꺼지자 객석에서는 10여분에 달하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관객들은 86년 로마월드컵의 로고송처럼 쓰여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잠들지 말라’가 ‘승리하리라(Vincero)’는 드높은 외침으로 끝나자 관현악의 후주(後奏)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한 관객은 “여러 층으로 겹겹이 펼쳐진 장엄한 황궁과 주위를 에워싼 무사(武士)들의 장관이 얼마 전 국내에 소개된 장 감독의 영화 ‘영웅’을 연상케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당초 우려했던 대로 ‘음향’이었다. 4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빈 필하모니 야외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우려했던 심한 에코(반향음)는 없었지만 무대 위를 이동하는 출연자가 많아서인지 티무르 왕 등 일부 배역의 음성이 귀에 따갑게 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믹싱 콘솔의 조정에 따라 음향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오후 6시반부터 월드컵경기장 북문 부근 홍보부스에서 열린 ‘투란도트의 주인공처럼’ 이벤트도 성황을 이뤘다. 행사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은 명(명) 황실의 화려한 옷차림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투란도트를 주제로 한 소설과 만화, 티셔츠 등 투란도트 이미지 상품 판매부스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공연에는 리빈 주한 중국대사와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순규 예술의전당 사장, 김명곤 국립극장장,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등 문화계 인사와 민주당 정대철 대표최고위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권한대행 등 정치권 인사들도 대거 관람했다. ‘투란도트’ 공연은 11일까지 계속된다. 02-3473-7635, http://turandot.co.kr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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