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제주도 성산포나 서귀포 법환리 마을 끝자락의 바닷가 돌밭에 나가 하나둘씩 돌을 뒤집으면 ‘깅이’를 무한정 잡을 수 있다. ‘깅이’는 초고추장에 잘 비벼 날 회로 먹거나 잘게 갈아 좁쌀죽을 해먹는다.
‘깅이’는 게의 제주도 방언. 아삭아삭 씹어 먹을 수 있고 껍질이 얇다. ‘깅이죽’은 제주도 토산 음식으로 현지인들도 잘 모른다. 해녀들이 잠수질 후유증으로 무릎이 아프거나 관절이 결릴 때, 여름철 보양식으로 추렴해 먹던 음식이다. 흔히 제주도 전복죽을 으뜸으로 치지만 ‘깅이죽’을 한번 맛보면 ’한 수 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깅이죽’을 비롯해 강원 평창군 청옥산 ‘곤드레밥’, 강원 고성군 화진포 ‘참망치회’, 충남 서산시 ‘박속밀국낙지탕’ 등 전국 각지의 음식 88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TV나 여행지 등에서처럼 무조건 맛있다고 치켜세우는 인상기 형식의 ‘맛자랑’ 코너와는 격이 다르다. 음식 맛보다 감칠맛 나는 ‘글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우리 음식에 대한 탐구는 저자의 연륜과 농익은 미각을 능히 짐작하게 한다.
저자는 시인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구수한 토속 언어와 걸쭉한 입담을 버무려 글맛을 살렸고 ‘자산어보’ 등 옛 문헌을 찾는 수고와 주방장과의 진솔한 대화로 음식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아냈다.
저자가 책 끝머리에 “삭힌 젓갈 및 된장 간장의 ‘건건함’과 고추의 ‘얼큰함’이 어울려 한국의 미각을 형성했다”고 한 것은 시인이 아니면 느낄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탁월한 감각의 소산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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