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으로 상처 내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어디든 손톱을 대본다
햇빛들 목련꽃만큼씩 떨어지는 날 당신이 손톱 열 개
똑똑 발톱 열 개마저 깎아준다
가끔씩 입으로 거친 결을 적셔주면서
신에게 사과했다
-김경미, ‘생화’
여백이랄까, 여운이랄까,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상상력, 침묵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호기심…. 그런 마음의 결을 느끼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상상할 것도 없이, 한숨쉬며 더 이해하려고 애쓸 것도 없이, 보여주는 대로만 보고 느끼라고 무엇인가가 이끄는 듯해서 자꾸 시를 읽게 된다. 시는 바로 그 점을 경계하고 있으며 곳곳에 샘물 같은 여백을 갖고 있으니….
생화, 진짜 꽃. 그가 가짜 꽃에 속기 싫어 손톱을 들이대는 행위는 섬뜩하다. 아름다움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행동은 대상은 물론 자신까지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시인은, 아름답다고 믿어버리면 만사가 형통할 대상을 향해 손톱을 세운다. 일단 확인하는 순간 그 대상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그의 마음은 찢긴다. 진실을 믿어주지 못해 손이나 혀로 죄를 범한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나 역시 한두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행히도 그의 곁에는 모성과 같은 어떤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그가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확인하고자 하는 삶을(혹은 진실이나 사랑을)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감싸 안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손톱을 들이대며 확인한 대상을 통해서만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의 깨달음이 그다지 제한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존재를 통해서도, 자신이 선뜻 믿어주지 못한 존재를 통해서도, 부대끼며 뭔가를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신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는 깨달음은 오직 이 시를 쓴 자만의 몫이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줄 아는 자들의 풍요가 그의 고통을 얼마쯤은 보상하리라 믿는다.
조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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