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대중가수와 기획사의 만남 ‘특별한 콘서트’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10분


코멘트

◇ 단순 라이브 탈피 다양한 아이디어 접목 … 야외 도시락 공연·클래식 가미 등 ‘색다른 맛’ 연출

”여러분들 중에 혹시 내일 모레 결혼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요. 축가 불러드릴게요.”

무대에 선 이문세씨의 말에 손을 번쩍 든 두 명의 관객. 한 명은 첫눈에 봐도 곧 결혼할 젊은 여성인데 다른 한 명은 나이 지긋한 아줌마 관객이다. 알고 보니 딸이 모레 결혼한다고. 왁자하게 터지는 웃음소리. 가수 이문세씨의 콘서트 ‘더 오페라(The Opera)’ 현장이다. ‘더 오페라’는 전국 공연이 모두 매진되어 현재 연장 순회공연에 돌입한 상태다.

무대에 선 가수에게 관객의 함성과 박수는 ‘엔도르핀’이나 다름없다. 숫제 ‘마약’이라고 표현하는 가수도 있다. 그런데 이 관객의 함성을 엔도르핀 삼아 뛰는 사람이 가수 외에 또 있다. 바로 대중가수들의 콘서트를 기획하는 사람들.

◇ 이문세 콘서트는 매회 컨셉 변화

과거에는 단순히 ‘○○○ 콘서트’ 하고 가수의 이름만 내걸었던 콘서트들이 요즘 색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99% 가수에게 의존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획자가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콘서트를 ‘연출’하는 것. 극장 대관하고 공연 포스터 붙이는 데에 그쳤던 과거에 비하면 기획자의 역할이 한층 커진 셈이다.

젊은층이 주축을 이룬 ‘좋은 콘서트’ 직원들. 이들의 머리에서 신승훈의 ‘The 3rd Island’ ‘시월의 눈 내리는 마을’ 등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5월에도 앞서 말한 이문세씨의 ‘더 오페라’를 비롯해서 여성그룹 빅마마의 ‘더 파워’, 그룹 동물원의 ‘미술관 옆 동물원’, 노영심씨의 ‘이야기 피아노-10년 후에’ 등의 기획 콘서트들이 잇따라 열린다. 이들 콘서트에서 가수는 뮤지컬 출연자로 변신하는가 하면, 무대가 섬처럼 꾸며지고 관객은 모두 푸른 옷을 입고 파란 야광봉을 들어 ‘바다’가 되기도 한다. 야외에서 기획사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공연을 보는 ‘소풍’ 같은 콘서트도 있다.

라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종현씨는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콘서트들이 많아지는 이유에 대해 “가수들의 콘서트가 느는 데에 비해 라이브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의 수는 한정돼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 즉 가수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획되고 그 기획 속에 가수를 대입하는 새로운 구조의 콘서트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 콘서트의 대표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기획사 ‘좋은 콘서트’(대표 최성욱)다. 1997년 설립된 ‘좋은 콘서트’는 10월의 마지막 날에 열리는 야외공연인 ‘10월의 눈 내리는 마을’, 토요일마다 공연하는 이승철의 ‘Saturday Night Fever’ 등 화제의 공연들을 계속 창조해냈다. 이들의 최고 히트작이 바로 누적 관객 30만명을 돌파한 이문세 콘서트. 이씨는 ‘좋은 콘서트’가 주최한 공연에서 매회 지휘자, 성악가 등 독특한 인물로 변신했다. 3회째를 맞은 올해의 ‘더 오페라’ 공연 컨셉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더 오페라’ 무대에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샹들리에와 움직이는 배가 등장하고 이씨는 이 뮤지컬의 주인공인 유령으로 분장한 채 등장한다.

‘좋은 콘서트’ 기획팀의 함윤호씨는 “단순히 한 가수의 콘서트를 대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특정 가수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기획자의 역할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단정한 이미지인 가수 성시경의 공연은 ‘성시경 클래식’이라는 타이틀로 지극히 고급스럽고 클래식 음악 같은 분위기로 끌고 갔다고. ‘성시경 클래식’은 포스터부터 더블베이스 등 클래식 악기를 동원해 촬영했고 20인조 현악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이제는 가수들도, 그리고 관객들도 특화된 공연을 원합니다. 사실 음반이 1만원 선인 걸 생각하면 4, 5만원인 콘서트 티켓은 결코 싼 것은 아니지만 요즘 관객들은 재미있다는 소문만 나면 가격에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좋은 콘서트’ 홍보팀 최윤순씨의 설명이다.

5월23, 24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조각공원에서 열리는 ‘미술관 옆 동물원’ 콘서트를 기획한 셀 인터내셔녈의 엄항용씨도 “기획력이 가미된 콘서트일수록 관객의 호응이 커진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가수의 이름만 내걸어도 오는 관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 관객은 가수 외에 플러스 알파를 요구하죠. 또 기획 콘서트는 새로운 관객층을 개척하는 의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원과 함께하는 가을소풍’ 콘서트를 열면 동물원의 팬뿐만 아니라 소풍을 가고 싶은 연인이나 가족까지 새로운 관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죠.”

◇ ‘현장의 즉흥성’ 기획자들 괴롭혀

폴리미디어 이선철 대표. 그는 가수 이승환이 가장 신뢰하는 콘서트 기획자로 꼽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중가수의 콘서트 기획은 여타 장르의 공연기획에 비해 여전히 제약이 많고 그만큼 어려운 분야다. 대학로 폴리미디어 씨어터의 이선철 대표는 “해가 갈수록 공연기획 일을 해보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나 시스템 측면에서나 공연기획 분야는 아직도 열악하다. 특히 가수들의 콘서트는 여전히 가수의 명성이 공연의 성패를 절대적으로 좌우한다. 때문에 뮤지컬이나 클래식, 국악 등에 비해 기획자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가수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도 기획자를 힘들게 만드는 부분이다. “한 기획사가 A라는 가수의 콘서트를 잘 기획해서 ‘잘한다’는 소문이 났다고 칩시다. 그래서 B와 C라는 가수가 그 기획사에 자기의 콘서트를 부탁해요. 그러면 정작 A라는 가수는 이 기획사를 떠납니다. 가수들 간의 자존심 싸움 때문이죠.” 한 베테랑 기획자의 귀띔이다. 이 때문에 의외로 특정한 기획자와 가수가 오랜 시간 손잡고 같이 일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라고.

무엇보다 기획자를 괴롭히는 점은 ‘현장의 즉흥성’이다. 공연 현장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1만명의 관객이 몰린 야외공연중에 갑자기 비가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1만명의 관객에게 일일이 우비를 돌리는 일을 기획자말고 누가 하겠습니까?” 함윤호씨의 말이다.

혹시 가수들은 공연 중간에 “컨디션이 나쁘다”며 공연을 취소해 기획자를 애태우지는 않을까? 그러나 의외로 이런 일은 드물다고 기획자들은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공연이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아무리 아프고 컨디션이 나빠도 대부분 무대에 선다고. 특히 인기 절정의 가수들은 콘서트 준비와 계속되는 방송 스케줄에 정작 공연 당일에는 탈진하기 일쑤다. 대기실에서까지 링거를 맞고 있는 가수들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런 가수들도 정작 무대에 서면 언제 아팠냐는 듯 열창한다고.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이종현 대표는 이처럼 가수들이 콘서트를 중시하고 재미있는 기획 콘서트가 많아지는 최근의 경향을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말로 요약한다. “과거에는 몇몇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빼고는 라이브 공연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몇몇 댄스그룹만 빼고는 새 음반이 나오면 공연 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됐습니다.”

또 이승철 이승환 신승훈 이소라 윤도현밴드 이은미 김장훈 등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었던 ‘라이브 전문 가수’들의 대열에 성시경 빅마마 휘성 등 신인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그동안 댄스그룹과 ‘만들어진 상품’만 난무했던 가요계에 이것은 분명 희망의 조짐일 것이다.

전원경 주간동아 기자 winni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