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투란도트'…푸치니는 살아있다

  • 입력 2003년 5월 12일 18시 09분



“나는 당신의 쇼에 방해가 되지 않겠소.”

98년 ‘투란도트’ 쯔진청(紫禁城)공연실황 DVD에 실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에서 지휘자 주빈 메타는 연출자인 장이머우 감독에게 이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농담조였지만 이 말은 큰 의미를 지닌다. 과연 야외오페라 ‘투란도트’(사진)는 장이머우 혼자의 쇼였나?‘음악’은 실종되고 말았나? 이는 공연을 본 관객들이 인터넷상에서 펼친 논전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다.

실상은 이렇다. 성악진의 기량을 정밀하게 비교하는데 확성장치를 사용한 ‘야외오페라’는 적당치 않다. 가수의 노력보다는 믹싱콘솔 앞에 앉은 음향감독의 손끝이 성량(聲量)과 ‘다이나믹’(강약대조)에 훨씬 크게 작용한다. 작곡가가 혼신의 노력으로 정밀하게 써내려간 악보 역시 많은 부분에서 의미를 잃는다. 경기장 확성장치는 특정 높이의 음을 깎아내야만 하므로, 악기 사이의 작은 밸런스까지 정밀하게 계산한 작곡가의 의도가 완벽하게 전달될 리 없다.

주최측에 따르면 ‘투란도트’는 연 11만명이 관람하고 65억원의 입장수입과 5억원 가량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런 세기의 쇼를 관객들에게 알리는 데 ‘음악가’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맞다. 98년 베이징 공연에 등장한 투란도트역의 베테랑 조반나 카솔라, 유럽 등지에서 제법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테너 니콜라 마르티누치 등이 출연했지만 다수의 관객들은 프로그램 책자를 받아들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거나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반면(反面)의 실상도 있다. 앞의 전제에도 불구하고 출연진은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으로 객석에 어필했다. 9,11일 ‘류’역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미나 야마자키는 서정적인 음색과 완벽한 음색연기 및 무대연기, 고음의 피아니시모(弱音)에서의 탁월한 처리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양희준과 발렌틴 피보바로프 등 두 명의 티무르도 인상적이었으며 8, 10일 칼라프왕자로 등장한 니콜라 마르티누치도 종종 호흡이 짧아지는 결점을 노출했지만 녹슬지 않은 강건한 음색을 선보였다.

잊을 뻔한 사람이 있다.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는 세 시간 내내 살아 움직이면서 무대를 강력하게 통제했다. 장이머우가 무대와 조명, 안무로 펼쳐낸 마법 역시 푸치니의 상상력 위에서 진행됐을 뿐이었다. 처형 집행자 장면의 야만적인 리듬과 화음부터 리우의 희생장면에서 나타난 현과 목관의 정밀한 심리표현까지, 그는 끊임없이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100년동안 계속돼 새로울 것이 없다 해도 푸치니에 대한 오마주(예찬)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음악은 이 무대에서 ‘절대’ 실종되지 않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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