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덱스의 설립자인 프레드릭 스미스는 청년시절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아들이 마이애미에 사는 부모님께 보내는 생일선물 배달에 일주일 이상 걸리는 시스템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후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어떻게 미국 내 소화물을 하루 만에 배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즐겨 타던 자전거 바퀴에서 영감을 얻어 석사학위 논문에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라고 이름붙인 항공운송시스템을 제안했다.
시스템의 개념은 이렇다. 우선 미국 내 모든 도시에서 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애틀랜타 공항을 허브, 즉 축(軸)으로 한다. 매일 모든 도시에서 부치는 소화물을 오전 중 비행기로 허브 공항인 애틀랜타 공항으로 모은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화물을 분류한다. 각 비행기들은 오후에 각자 자기 도시로 가는 소화물을 싣고 돌아간다. 이렇게 하면 하루 안에 모든 소화물을 원하는 지역으로 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이런 간단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실행되기에는 미국의 항공관련 규제가 너무 복잡했다. 항공안전이라는 명분으로 항공노선의 개설은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 업자들의 로비로 새로운 사업체의 신규 진입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짐작컨대 이 시대 미국 내 항공노선 조정은 지금 서울시내 버스노선을 조정하기 힘든 것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바로 이 시기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제일 먼저 항공노선에 대한 규제를 혁파해 항공사들의 노선설정과 진입을 완전 자유화함으로써 젊은 경영자의 꿈이 이뤄지도록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페덱스의 성공요인은 소화물을 48시간 내 세계 어떤 목적지에라도 배송할 수 있도록 하는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최첨단 정보관리 시스템으로 꼽힌다. 위성통신, 인터넷무선통신 등을 활용해 수송기나 차량 등 화물배달 수단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연결해주는 정보통신 기술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페덱스가 이런 기술에만 의존했다면 오늘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80년대 레이건 정부 아래서 규제완화, 민영화, 금융자율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UPS 같은 국영 소화물 업체가 주도하던 기존 시장에 신생기업 페덱스는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페덱스가 짧은 시간 안에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월스트리트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스미스의 획기적인 석사논문은 대학에서 C평점밖에 받지 못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는 페덱스의 미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전 세계 물류 네트워크와 정보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 줬다.
이런 미국의 역사를 외환위기 이후 시장중심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어만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시장 친화적인 개혁을 추구해 오고 있지만 아직도 과거 개발시대 만들어진 핵심규제들이 상존해 새로운 실험이 시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월스트리트와는 달리 신생기업의 미래를 제대로 평가할 역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본을 조달해줄 능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핵심규제들을 과감히 혁파하고 꾸준히 자본시장을 육성해야 페덱스와 같은 신생기업을 여럿 출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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