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의 아이들을 보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무슨 일에든 열정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 그저 대충하다가 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이미 몸에 밴 습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이들이 그렇게 둘레의 일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까닭을 돌이켜보면 아이를 초능력 인간으로 만들려는 부모가 그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 야마구치 다쿠마는 아주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다. 다만 몇 년 째 몸이 아파 시골에서 요양 중인 동생이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이다.
야마구치를 한마디로 소개하는 것은 어렵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보통의 6학년 아이지만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6학년이 아니라 세상을 오래 산 어른같기도 하고, 동생을 대하는 태도로 봐선 심성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요양 중이던 동생이 7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동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못마땅하고 바보스럽게만 본다거나, 동무들을 대하는 태도도 진심과 순수함보다는 비아냥과 냉소뿐이다. 차라리 말이라도 시원하게 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마구치는 동무들에게 긴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 하는 아이다.
이 책은 주인공 야마구치의 시점으로 쓰여져 섬세한 심리묘사와 함께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야마구치는 귀찮은 일이 생기거나 짜증이 나면 속이 메슥거린다든지 두통이 온다든지 몸이 먼저 반응하는 아이다. 해결하기 힘든 일이 닥치면 몸이 아파 앓아눕는 아이들처럼 야마구치도 아직 자신의 정신력으로 이겨내기 힘든 상황 앞에서는 그것을 해결할 행동이나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광이나 부리고 바보같은 말만 하던 동생이 ‘늑대’(들개)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야마구치는 자기도 모르게 동생의 말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사과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동생의 말과 행동, 그리고 신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무의 모습은 야마구치가 또래 아이들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처음에는 ‘재수없게’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던 일 때문에 결국은 자신의 참 모습을 찾게 된 야마구치의 마지막 말이 퍽 인상적이다.
“믿을 수 있겠어, 야마구치 다쿠마? 지금 난 진짜야.”
오혜경(주부·서울 금천구 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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