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22…명멸(明滅)(28)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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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기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것이 직녀성의 베가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견우성의 알타이르가 있고 그 위에는 백조자리의 데네브 이 세 별을 여름철의 대삼각이라고 부르니까 잘 기억해 두거라 보통학교 미야케 선생님이 칠판에 썼다 커다란 삼각형이 정수리에서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을 보면 벌써 날짜가 바뀐 모양이다 오늘은 7월 15일이다 신문에서 날짜를 볼 때마다 오늘이 누군가의 명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불과 12년 사이에 여동생이 죽고 아버지가 죽고 딸이 죽고 아들이 죽고 어머니가 죽었다 드르렁드르렁 아래층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괘종시계를 보았다 2시다 교대시간인데 좀 더 자게 놔두자 12시 넘어서까지 김군의 장래 계획을 들어주었다 올림픽 옆에 있는 이와다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나치며 인사만 나누다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대학에 갈 돈이 없어서 검정시험을 거쳐 의사가 될 꿈을 꾸고 있단다 내일동 반장이 일주일에 한 번 아침 8시에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2시간 교대로 방공 감시소에서 일하면 현지 징용으로 간주되어 징병이 면제된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스무 살 건장한 청년이 정말 징병을 면제받을 수 있을까 만약 중국의 제13사단에라도 배속되면 항일운동을 하고 있는 김원봉 장군과 적대할 가능성도 생긴다 그의 아버지는 김원봉 장군의 아버지의 동생이고 그는 김원봉 장군의 고종사촌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징병보국대 역시 다음달부터 징병제가 실시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편배달원이 빨간 종이를 들고 나타난다

<임시소집영장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 15번지 구니모토 우테쓰

우 임시소집을 명하니 좌기일시 이 영장을 소지하고 도착지 해당 소집 사무소에 출두할것

도착지 보병 제77연대

소집부대 보병 제77연대

조선총독부밀양군청>

나는 쌍안경을 내리고 윤곽이 뿌연 달을 육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일본군은 서에서는 호북으로 진격 서남에서는 버마를 점령 남에서는 필리핀의 민심을 파악 뉴기니에서는 격전 다윈에서는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동맹국인 독일군은 동으로는 레닌그라드와 고리키를 공격 동남으로는 카프카스에서 격전 유고에서 빨치산을 섬멸 서로는 런던을 폭격 남으로는 이탈리아로 진주하였다 이탈리아군도 시리아를 폭격 튀니지에서 공방 수단에도 첫 폭격을 감행하였다 전쟁은 내 온 몸을 헤집고 다니는 피처럼 온 세계를 헤집고 다니고 있다 두근! 두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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