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새들도 고단하다

  • 입력 2003년 5월 23일 14시 57분


지난 4월 초 서울 마포구 성산2동 대림아파트 17층에 사는 임민상씨는 발코니에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한 쌍이 황급히 날아갔고, 화분엔 아직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알 한 개가 놓여있었다.

이후 임씨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황조롱이는 알 3개를 더 낳았다. 지금은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가며 알을 품고 있다.

매과의 맹금류(猛禽類)인 황조롱이는 서울 도심에서 살아가는 대표적인 새. 주로 고층 빌딩의 간판 틈새나 옥상, 아파트 발코니 등에 둥지를 튼다.

숭례문시장 옆 삼부토건 건물 옥상에도 황조롱이가 출현했다는 제보를 받고 22일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둥지만 있고 황조롱이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서울 도심은 새가 살아가기에 험난한 곳. 남산이나 한강 밤섬처럼 환경이 좋은 곳을 제외하면 둥지를 틀만한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보니 천연기념물 솔부엉이는 종종 무인카메라에 집을 짓는다. 박새와 딱새는 울타리 틈이나 블록 담장의 구멍, 우체통 투입구, 심지어 자동차 바퀴 틈새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경희대 구태회 교수는 "살아남기 위한 새들의 몸부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사고도 많다. 12일 오후 10시경 솔부엉이 한 마리가 중구 예장동 남산 중턱 한 건물의 유리창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김성만 회장의 설명.

"황조롱이 산란기인 요즘 수컷이 암컷을 위해 먹이를 구하려고 정신없이 날아다니다 빌딩에 부딪쳐 죽는 일이 많습니다. 6, 7월에는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이 비행 연습을 하다 돌풍에 휘말려 땅에 떨어지는 일도 많습니다."

흰뺨검둥오리의 경우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물가로 나와 도로에서 나들이 연습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의 흰뺨검둥오리를 5년째 돌봐온 박정길씨는 "얼마 전 새끼 5마리가 부화했는데 사람이 던진 돌에 맞아 죽거나 물가로 나오다 고양이한테 먹혀 이제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까치는 최근 위해조수(危害鳥獸)로 지정돼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배 밭 등지에 몰려다니며 과일을 파먹어 농가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먹을 것이 줄어들다보니 까치들이 배 밭으로 몰려간 것"이라며 "까치가 살만한 공간을 남겨 놓았어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무사히 목숨을 지킨다고 해도 서울 새들의 하루하루는 고단하다. 서울 참새는 매연 때문에 시골 참새에 비해 시커멓고 꾀죄죄하다. 한강에 사는 새들은 한강 교량의 야간 조명이나 차량 소음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성산동 아파트에서 알을 깨고 나올 황조롱이 새끼들. 그들이 힘차게 하늘로 비상할 때 서울 도심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